ʊ이야기와 도시(話n都) - 新羅千年의 傳說 |
28. 기림사(祗林寺)
푸른 숲
cheonglim03@hanmail.net
경상북도 경주(慶州)에서 동으로 동산령의 산을 넘어 감포(甘浦)로 가는 길로 고개를 거의 다 지나서 경주시 양북면 안동(陽北面 安洞)에서 북(北)으로 4km 산 속으로 들어가면 호암리(虎岩里)에 이르게 된다. 신라시대부터 내려오는 큰 절로서 기림사(祗林寺)라고 하는 절이 이곳에 있다.
경주 사찰 중에 제일 큰 절이며, 대본산의 하나로서 지금도 봄, 여름, 가을에는 절의 손님과 일반 여행객들이 많이 찾아온다. 이 절은 신라 선덕여왕(善德女王) 12년에 이룩한 31 본산의 하나이다. 광대한 터전에 나무가 빽빽이 서 있고 그 사이로 맑은 시내와 나는 듯한 폭포가 유현(幽玄)한 정취(情趣)를 자아내는데, 드높은 대적광전(大寂光殿)을 비롯하여 오백나한전(五百羅漢殿), 명부전(冥府殿), 화정당(華井堂), 진남루(鎭南樓), 약사전(藥師殿), 응진전(應眞殿) 등 거대한 전각(殿閣)이 십여 채 늘어서 있는 오래 된 큰 절임을 자랑하고 있는데 그 보다 이 절에만 있다는 팔괘의 하나인 오색 모란화〔五色牧丹花〕로 더욱 유명하였다고 한다.
그 팔괘 중위 하나인 모란화는 한 가지에 오색 가지의 꽃이 핀다는 말이 있다.
지금도 모란과 작약이 많이 재배된다. 그러나 지금은 한 나무에 오색 가지의 모란꽃은 피지 않는다고 하니 아마 이것도 하나의 전설인 듯하다.
참고 자료 |
○ 기림사(祗林寺)
옛날 인도 범마라국 임정사에 50년간 수도하면서 천안·숙명·타심통을 얻은 도인 광유성인이 있었다. 어느 날 스님은 제자들을 모아 놓고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했다.
『내가 전생에 부처님의 제자로 공부하고 있을 때 바사익왕의 세 시녀는 늘 꿀물과 우유로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공양했다. 제자들 중에는 인물이 출중한 스님이 한 분 계셨는데 그녀들은 부처님 다음으로 그 스님을 봉양하다 그만 공경이 사랑으로 변해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게 되었다. 스님은 여인들의 유혹을 제도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아 산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스님은 아픔답고 상냥한 세 여인을 잊지 못해 번민하다가 결국 도(道)를 이루지 못한 채 입적했다. 나는 그때 그 스님의 도반으로 먼저 도를 이루는 사람이 서로 제도키로 약속을 했었다. 이제 금생의 인연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친구인 그 스님과 세 시녀를 제도하려 하니 누가 나의 숙세 인연 있는 자들을 이곳으로 안내하겠느냐?』
그때 승열 비구가 말했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오, 장하구나. 너는 아라한과를 얻었으니 능히 할 수 있으리라. 그 스님은 금생에 수다라라는 대국의 국왕이고 왕후와 후궁은 전생의 시녀이니라.』
『한 명의 시녀는 어디 있습니까?』
『곧 왕의 아들로 태어나 스스로 여기 올 것이니라. 수다라 왕국은 아직도 불법이 전해지지 않았으므로 세 명을 한 번에 모셔오기는 어려울 테니 먼저 후궁인 월애 부인을 인도토록 해라.』
승열 스님이 수다라국에 도착했을 때 왕은 마침 5백 궁녀를 데리고 강가를 거닐다가 숲속에서 잠들어 있었다. 산책을 즐기던 궁녀들은 좌선에 든 스님을 발견하고는 이상한 모습에 의아한 눈길을 주고받다가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어디서 오신 누구신지요?』
『나는 범마라국 임정사에서 온 승려입니다.』
스님은 궁녀들에게 승려란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불법이 무엇인지를 설명해 주었다.
이때 잠에서 깨어 이를 목격한 왕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소리쳤다.
『너는 누군데 궁녀들을 꼬드기느냐?』
왕은 승열 스님의 목에 칼을 대고는 인생의 참 진리가 뭔지 알려주겠다며 불개미 집을 헐어서 스님의 몸에 풀어 놓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개미는 스님의 몸을 물지 않고 모두 흩어졌다. 이를 본 왕은 크게 놀라며 예사로운 분이 아닌 줄 알고는 스님을 궁중으로 정중히 모셨다.
승열 스님은 궁중에 살면서 1년간 왕과 왕비, 후궁들을 교화했으며 수다라 왕국에 최초의 절 범승사를 세웠다.
『이제 그만 임정사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님은 떠날 채비를 하면서 월애 부인을 모시러 온 뜻을 밝혔다. 왕은 보내기 아쉬웠으나 월애 부인이 선뜻 나서니 어쩔 수 없었다.
월애 부인은 광유성인의 제자가 되어 물 긷고 차를 달이며 열심히 정진했다.
어느 날 광유 스님은 승열 비구에게 다시 수다라국에 가서 왕과 왕비를 모셔오도록 일렀다.
승열 스님이 수다라국에 다다랐을 때 왕과 왕비는 물론 지난번에 귀의한 10여 명의 제자와 신도 및 백성들까지 크게 영접했다.
『월애 부인은 대왕이 오셔서 함께 공부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왕이 도착하기 전에 도를 얻고 사바의 인연을 마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기가 막힌 듯 슬피 탄식했다.
『참으로 세상은 허망하군요.』
『대왕이시여! 이 세상에서 참으로 소중한 것이 뭔지 아십니까?』
『선지식이여! 저를 일깨워 주소서.』
『일체를 소유할 수도 있고, 버릴 수도 있는 자신을 아는 일이지요.』
승열 스님은 자상한 설법과 함께 왕의 전생 이야기를 들려줬다. 왕은 참회하면서 왕비인 원앙 부인과 함께 광유성인에게 가서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왕위를 태자에게 물린 뒤 임정사를 향해 길을 떠났다.
만삭의 몸으로 길을 나선 원앙 부인은 중도에 지칠 대로 지쳐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부인, 힘을 내구려. 나와 함께 도를 이루자고 약속하지 않았소? 』
『대왕이시여! 아기를 낳으면 무어라 이름을 지을까요?』
『아들이거든 안락국이라 하고, 딸을 낳으면 안양이라 하여 주오.』
가슴이 터지는 듯 아프고 슬픈 마음으로 부인과 작별한 왕은 광유성인의 제자가 되어 차 시봉을 하면서 세속 일을 잊고 정진에 몰두했다. 그렇게 7년이 되던 어느 날, 임정사로 한 남자아이가 아버지를 찾아왔다. 그는 원앙 부인이 낳은 태자 안락국이었으니 바로 전생의 한 시녀이기도 하다.
반갑게 상봉한 부자는 함께 공부했다. 수다라왕이 도를 얻어 열반에 들자 광유 스님은 안락국에게 전생 이야기를 들려주며 일렀다.
『안락국아, 너는 인연지를 찾아가서 평생을 교화 제도 하여라. 그 인연지는 여기서 2백50만 리 떨어진 해동국(海東國)으로 그곳엔 문수보살이 부처님의 부축을 받고 계신 곳이다. 가거든 거북이가 물 마시는 형상을 하고 있는 산을 찾아라. 동해 바다의 기운을 들여 마시는 용이 사는 연못이 있고, 탑의 형상을 갖춘 남쪽 돌산에는 옥정(玉井)이란 우물이 있으니 그 물을 먹으면서 수도하여라. 북쪽에는 설산을 닮아 돌 빛이 흰 산이 있으니 그 산 굴속에 부처님을 조성하여 모셔라.』
해동(海東) 계림국(鷄林國)에 도착한 안락국은 명당을 찾아 조그만 암자를 세워 임정사라 명했다. 절이 창건된 지 150년 후, 신라의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절을 확장하고 절 이름을 부처님 당시 최초의 절인 기원정사 이름을 따라 “기림사(祗林寺)”라 개명했다.
(푸른 숲. 201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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