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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4

(엽서수필 4) 수그사이 환희 24. 둘째누나

 

엽서수필 4 : 수필과 그림사이, 그 환희

24. 둘째누나

이영백

 

 슬픔이 기쁨이 될 리 없다. 그러나 팍팍한 삶을 마치는 것도 새로운 기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일 그렇게 많이 놓아두고서 한만 쌓아두고 미련 없이 둘째누나는 쉰다섯에 갔다. 사람은 왜 죽는가? 많은 사연이 있을 수 있다. 내가 성인된 후 가족 중에 가장 빨리 죽은 사람이 둘째누나다.

 둘째누나는 평생을 고생하였다. 나와 나이 차이가 17살이나 나기에 어렸을 때는 그런 누나가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시가에서 살기 어렵다고 하여 엄마가 찾아가면서 어린 나를 데리고 함께 찾아간 것이 기억난다.

 둘째누나는 시집을 갔다. 매형은 해병대 하사관(오늘날 부사관)출신이다. 군 생활하다가 제대하였다. 그때는 사회적으로 “개병대”라 불렀다. 남의 말이라고는 절대 듣지 아니하고, 고집대로만 하고 살았다. 자식 셋을 낳고 홀연히 혼자 부산으로 가버렸다. 직업이 목욕탕 화부(火夫)였다.

 그 직장도 오래가지 못하고 강원도 탄광으로 일하러 갔다. 둘째누나는 식구 데리고 강원도로 찾아가서 고생만 죽도록 하고, 아들 두고 가라하여 친정으로 딸 둘 데리고 돌아왔다. 참 삶이 기구하다. 어린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느냐? 누나의 삶이 고생으로 점쳐진 일이다.

 내가 고교 다닐 즈음 강원도에서 10살짜리 아이(생질)를 등 뒤에다 집 주소를 적어 붙여 혼자 기차 태워 보내었다. 불국사기차역에 내려 두어 지서에서 연락이 와 내가 데려왔다. 어찌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가?

 그 생질은 머리가 좋아 초교에서 공부도 잘 하였다. 커가며 생질의 제 누나 둘이 저네 이모 집에서 돈 벌기 시작하니까 이것을 어찌 알았을까? 다시 부산으로 데려간 매형은 목욕탕화부로 일하며 딸들을 돈벌이 시켰다.

 누나도 딸 둘과 아들이 있는 부산으로 떠나갔다. 번 돈으로 저네 아버지 잘 지냈다. 생질도 동래공전에 장학생으로 다녔다. 큰딸, 작은 딸 돈 벌어 생활하였다. 공연히 둘째누나 빙의 왔다며 매일 두들겨 팼다. 그 연유로 몸이 아파 친정으로 와 혼자 살다 쉰다섯에 쓸쓸히 돌아갔다.

 사람 부부지간에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평생을 괴롭혔는지 의문스럽다. 가족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막 제 날에 경주 다녀오면서 세상에는 나쁜 놈이 더 잘 산다는 억겁이 무너지는 그런 말로만 남았다.

 막 제 날 흰 눈이 펑펑 내렸다. 영면하실 일이다. 평생 그렇게 살다갔다.

(20211026. 화. 금융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