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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3/미늘

(엽서수필 3) 미늘 56. 고픈 신학문

 

엽서수필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56. 고픈 신학문

이영백

 

 야학으로 신학문을 공부하면서 낮에 서당 나가는 것에 흥미를 잃고 말았다. 서당은 아버지의 엄명으로 가라고 하니 형식적으로 오갔다. 아버지는 결코 내가 하고 있는 신학문을 몰랐다. 야학에서 주는 책만으로 부족하였다. 서점에 들러 “연합강의록”을 신청하였다. 경주서점에 강의록 회원으로 신청하고, 책은 우편물로 받았다. 권말에 월말고사 문제지도 있었다.

 야학 시작한 지 겨우 한 달 만에 그만 쫓겨나고 말았다. 초교 목조교실에 전깃불이 없어서 남폿불 켜놓고 공부하다보면 화재가 날 것이라고 교육청에서 강제폐쇄하고 말았다. 야학이 사라졌다. 며칠 지나고 연락이 왔다. 공부하는 장소가 “침례교회”로 다시 야학이 시작하였다. 이번에는 한문과목도 개설하여 선생님이 선배 아버지요, 시청 공무원이었다.

 교회는 전기가 들어오니까 나무 바닥에 남녀학생이 모두 엎디어서 칠판에 쓴 글씨며, 강의 듣고 재미나게 공부하였다. 특히 물상, 생물, 수학, 국어, 영어, 한문 등 하나같이 재미나게 공부하였다. 그 침례교회에서는 약 5개월 공부하였다. 교회 다니던 여학생 하나가 연애를 하였다. 삼각관계로 다투다 살인이 나고 말았다. 호사다마라 했든가 또 폐쇄하고 말았다.

 겨우 신학문에 재미 붙이나 싶었는데 이제 혼자 강의록으로 공부하여야 하였다. 한편은 먼 거리를 밤에 나다니지 않아도 되었고, 아버지에게 언제 들킬지 몰라 조마조마하던 마음이 사라지게 되어 차라리 마음이 편하였다. 신학문하고 싶어서 몸부림치는데 아버지는 서당만 계속 고집하였다. 학교 다니면 일꾼 하나가 줄어들기에 안 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였다. 한문 배워 축문, 혼서, 제문 지을 줄 알면 된다고 그렇게 된 것이라고 본다.

 강의록으로 월말고사지 문제를 풀어 우편으로 보내면 일일이 채점하고, 오답은 붉은 색 잉크로 정답을 알려 주었다. 영어문법이 어려워 아랫집 K여고 2년 누나에게 배웠다. 무서운 개 때문에 엄마가 늘 데려다 주었다.

 나의 신학문은 늘 고팠다. 강의록 책도 사야 하였고, 우편물 부치러 우체국까지 4km를 나다녀야 하였다. 그렇게 연합강의록으로 모두 2년 만에 이수하였다. 늘 나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신학문이 자리하고 배움이 고팠다.

 아버지는 말리고, 나는 신학문을 하려고 올인 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

(20210527.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