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수필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
53. 초동(樵童)되다
이영백
꼴딱 당한 것이다. 시골에서는 연료로 나무를 사용하던 시절이었다. 나무는 먼 산에서 해 오는 아찰이, 물거리, 장작, 가까운 야산에서는 낙엽이나 솔 갈비를 긁어모아야 하였다. 먼 산에는 큰 머슴과 셋째형이, 중간 산에는 중머슴과 넷째 형이, 야산에는 꼴머슴과 내가 낙엽이나 솔 갈비를 긁어 와야 하였다. 그래서 나는 소년 나무꾼인 “초동(樵童)”이 되었다.
낙엽은 야산 기슭에 있다. 가마니에 퍼 담아 지게에 올려 짊어지고 오면 된다. 지고 올 때 바람이 불면 한 발 나갔다가, 반 발 물러선다. 그렇게 집에까지 오려면 걸음 수가 배가 된다. 앞날 살아갈 일이 막막하였다.
큰 머슴과 셋째형은 새벽밥 먹고 초백이에 밥 싸서 칠십 리 길을 다녀 아찰이를 해 온다. 중 머슴과 셋째형은 도시락 사서 삼십 리 길을 다녀 물거리를 해 온다. 비가 오지 않는 날, 농사철이 아닌 때에 그렇게 나무를 준비하여야 추운 겨울을 잘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꼴머슴과 나는 낙엽을 모아다가 마당에 늘어둔다. 저녁 되면 외양간에 넣어 거름 만든다. 남은 낙엽은 부엌마다 불 지필 때 불쏘시개로 사용한다. 낙엽태운 재도 수시로 긁어모아다가 헛간에 쌓아 둔다. 모든 것이 농사짓는 데 거름이 된다. 낙엽은 아무리 긁어모아 와도 항상 부족하였다. 늘 일상 바쁘게 나무를 준비하여야할 뿐이다.
초가을이 시작되면 꼴머슴과 나는 소나무 밑동의 노란 솔잎갈비를 모으러 야산에 번질나게 다닌다. 솔 갈비는 연료로 치면 비행기에 사용하는 휘발유 정도의 고급연료감이다. 밥하는 데 솔잎갈비로 때면 연기도 잘 나지 않으며, 불기운이 좋아 지은 밥맛도 최고다. 특히 서 말 무쇠 참 솥에 밥 지으면 그 밥물 넘는 것하며, 뜸들일 때 불 조절도 쉬어 솔잎갈비를 누나는 그렇게 좋아하였다. 매일 긁으러 다니면 손가락이 물러 터진다. 많은 사람들이 긁어갔으니까 없어서 키 작은 소나무 밑동에 맨손으로 그러모은다.
명분으로는 서당 다니고, 실제는 가사를 도와야하는 나무꾼이 되었다. 소년이 자라서 앞으로 무슨 큰일을 해 낼지는 아무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여하튼 아버지 생각으로는 많은 자식 낳아 큰살림 이루는데 도움이 되었다.
신학문은 생각부터 하늘의 별 따기요, 그렇게 초동으로 삶을 살았다.
(2021052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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