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수필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
58. 신학문 어루만지다
이영백
생각할 겨를 없이 낮에는 즐거운 공부를 하고, 자투리 시간에 아르바이트하여 우선 현금을 만들어야 하였다. 사람이 “궁하면 통한다.”고 하였다. 한문을 배우고, 강의록으로 마쳤더니 중학교 1학년짜리 시간제 가정교사 자리를 얻었다. 배운 것은 공부밖에 없으니 그렇게 공부 가르치는 일을 맡았다. 참 다행이다. 한때나마 걱정 없이 내 공부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신학문 배우는 일상은 늘 바빴다. 큰 매형 집에 생질과 같은 방을 사용하는 것은 괜찮은 데 난 확실히 군식구였다. 생질 ㆍ 생질녀 여섯 가족이 복작거렸다. 늘 마음 한 구석에는 미안하고 조심스러웠다. “외삼촌은 집이 없어요, 왜 우리 집에 와 있을까”라고 말하는 듯 느껴졌다. 마침내 그 소리가 들리듯 환청까지 왔다. 그래도 한 학기 마치고 종업식을 하였다.
이제 여름방학이 되었다. 다시 귀가해 보려고 기회를 엿봤다. 그것도 고향 장날 낮에 아무도 없는 순간을 택하여 집으로 들어갔다. 내가 사용하던 토방(土房)에다 가방놓고, 방 청소도 하였다. 외양간 거름도 내고, 소 풀을 베어다 마당에 수북이 갖다 놓았다. 늦은 저녁이 되자 온 식구들이 모두 모였다. 슬그머니 마당 둘레 판에 끼어들어 앉아 밥을 먹었다.
저녁마치고, 멍석에서 밤하늘 치어다보면서 비교적 조용하게 은하수를 봤지만 매우 불안하였다. 그때였다. “막내는 이제 공부 다 했제. 집에 다 오고.” “방학이라서 왔습니다.” “신학문하면 사람 버린다고 누누이 말 했지. 집에 가축도 돌보고, 거름도 만들고 집안 일 좀 해라” “…예.” 그렇게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아마도 고맙게 피는 물보다 진한가 보다.
이제 서당에는 가지 않았다. 신학문에 푹 빠져 영어단어 외우고, 물상, 생물공부도 곁들였다. 수학, 국어, 사회과목에도 밤새워 공부하였다. 왜 아버지는 이렇게 재미난 신학문을 못하도록 하는 것인가 나만 몰랐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극기하려면 참 괜찮은 꾀를 내어야 하였다. 집에 돈 달라하지 않고, 공부하여야 한다. 등록금은 장학금으로, 교통비는 조금 일찍 일어나서 걸어가는 방법이다. 남의 집 논ㆍ밭에 김매고 용돈도 벌었다. 소문내어 야간에 영어공부방 만들어 뽀시락 돈을 벌었다.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에는 집안일을 도우는 일꾼으로 행세하였다.
(20210530.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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