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수필 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
23. 생콩 씹다
이영백
사람이 살아가면서 급하면 급한 대로 약방보다 민간조약(調藥)으로 치료하기 마련이다. 시골에서는 그렇게 하고 살았다. 물론 요즘이야 좋은 약이 많아서 약국으로 바로 달려갈 수 있지만, 시골에서는 돈이 귀하고, 웬만하면 조약으로 대처하곤 하였다. 어떨 때는 생콩도 약이 되었다.
요즘에 와서도 생식마을에서는 콩과 솔잎으로 식사대용으로 한다. 기회가 있어서 생식마을에 들렀는데 오히려 생식(生食)을 하면 좋다고 역설하였다. 화식(火食)은 음식을 너무 맛나게 만들어 포식하게 되었고, 그 후유증으로 사람이 살찌거나 아프다고 하였다. 생식하면 강건하고, 살찌지 아니하고, 질병에도 잘 이길 수 있다고 힘주어 강조하여 설명하는 데 오히려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생것이 약이 되었다.
콩은 밭의 소고기라고 한다. 밭에서 나는 곡식으로 단백질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소고기를 먹는 것보다 콩으로 대체하는 것이 훨씬 좋다고 한다. 콩은 두부를 만들 수 있다. 맷돌에 자루달린 어처구니로 갈아서 1차 가공으로 끓여 거르면 콩물이 나온다. 그 진액을 2차로 다시 끓여 물기를 빼면 두부가 만들어진다. 물론 이때 잊어버릴 수 없는 것이 간수(艮水)를 넣으면 굳어져서 곧 두부가 될 것이다. 두부는 밭에서 나는 고기 단백질이다.
생인손을 앓아 보았는가? 성격상 꼼꼼하다 보니 무엇인가 하나를 이루려면 신경을 곤두세우고 그것을 끝마쳐야 하는 아집을 가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간지럽다가 아프고, 통통하게 붓고, 발갛게 되었다.
“아버지! 손가락이 아파요.”
“어디 보자. 아니 생인손 앓네. 내 약 만들어 주꾸마.”
말 떨어지기 바쁘게 아버지는 노란 생콩 한 움큼으로 입에다 갖다 넣고서 씹어대기 시작하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비린 콩을 마구 씹었다. 엄마는 손가락에 처맬 헝겊조각을 잘라 놓았다. 생콩 입에 넣어 씹으면 얼마나 비릴까? 그 막 비린 것을 막내아들의 생인손 치료를 위해 아버지는 참고 생콩을 씹어댔다. 씹은 생콩을 헝겊조각에 밭아내어 처매어 묶어주었다.
3일이 지난 후 풀어보니 손가락 살이 퉁퉁 불고 그만 쪽~닥 하였다. 그렇게 비린 생콩 씹어서 붙여주어 나았다. 비린 생콩이 내게는 약이다.
(2021033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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