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에 다시 오른 마을뒷산 계룡산” |
83. 부러진 나뭇가지
이영백
오늘도 야시골공원을 오른다. 글 쓰다 지치면 물 한 병 들고 산을 오른다. 시끄러운 소음이 사라진 산 위로 오른다. 누가 그랬다. 산을 왜 오르느냐고? 산이 있으니 오른다는 정답 아닌 명답을 말하였다. 공원의 나뭇가지를 치어다본다. 마치 사람들이 조롱조롱 매달려 벗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의 가계도(家系圖)는 나무와 같다. 시조가 있고 중조, 파조, 입향조, 고조, 증조, 조부, 아버지에서 나로 연결된다. 손자, 증손, 현손, 내손 등으로 이어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무도 눈에 보이지 않는 땅속 밑에 튼튼한 뿌리가 숨어 있다. 사람의 시조(始祖)같다. 땅바닥에 나무의 밑동이 중조다.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밑가지는 파조다. 제 각각 방향을 정해 벋어난 가지는 사람들이 지구 어디라도 흩어져 살 듯 파조다. 나뭇가지는 고조이하 선조다. 잔가지는 나를 두고 자손이 이어가는 듯하다. 이것이 가계도와 나무의 그림이 같은 것 같다.
태풍의 세찬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진 나뭇가지는 마치 찌그러진 가계도와 같다. 나무도 사람과 같아서 부러진 가지로부터 흰 피가 흘러나와 남아있는 가지를 보호하고 치료하기 위해 안간힘을 보탠다. 붙박이 나무도 이러 할진데 하물며 사람이야 찌그러진 가계도를 바로 세우기 위해 얼마나 노력들 해야 할 것인가? 마치 우리 집안 가계도 같다.
가만히 나무를 관찰해 본다. 봄이다. 뿌리에서 뿌리혹박테리아를 통하여 유기물질을 퍼 올려 물관으로 보낸다. 물관에서 체관으로, 잎으로 영양분을 보내면 잎은 고맙다고 탄소동화작용을 한다. 낮에는 산소를 뱉어내고, 밤이면 이산화탄소를 만들어 인간생활에 공기청정을 책임진다. 이 얼마나 식물들의 고마움인가? 여름이다. 작렬하는 태양의 햇살은 최대한으로 나무의 영양분을 만든다. 가을이다. 제 할일 마치면 잎사귀 끝부터 단풍이 든다. 겨울이다. 나무를 덮었던 잎사귀 하나둘 떨어뜨려 기어이 나목(裸木)이 된다. 옷을 모두 벗어버린 겨울의 나무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는 나무다. 튼튼한 수피(樹皮)를 장군의 갑옷처럼 챙겨 입고 나이테를 더하여 나무의 연치를 헤아리고, 생명을 보호한다.
부러진 나뭇가지 치어다보면서 흰 피 흘린 생채기에 나도 같이 아파한다.
(2020121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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