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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2/4다마 계룡산

(엽서수필 2) 82. 나무 등걸의 철학

 

40년 만에 시 오른 을뒷산 계룡산

82. 나무 등걸의 철학

이영백

 

 살다, 살다 이런 날이 오는 것이다. 흔들의자에 몸 눕히고 한가한 세상 곁눈질하며 행과 복을 얻는다. 구수한 누룽지 같은 행복을 찾는다. 그렇게 젊음을 온통 시간과 싸움하다 살면서 이러한 날도 맞고 보는 행복이다.

 여차저차 하여 장인을 32년간 모시게 되었다. 우리 집안에서는 열 자식 막내라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다. 대신에 처부모님을 모셨다. 빙모님은 일찍 돌아가셨다. 그러나 장인을 오랫동안 모실 수 있어서 즐거웠다. 집안에는 삼대가 같이 살아야 저절로 교육도 되고 집안이 자리를 잘 잡게 되는 것이다. 장인께서 나무 등걸 의자에 기대어 원본 일본소설을 읽으신다. 시간 나는 대로 외손자 둘에게 차례로 주택복권도 사오게 하고, 혹은 스포츠신문을 사오게 따로따로 심부름 시키고 또 따로 심부름 값을 치러 신다. 외손자 둘을 보면서 노년에 참 즐거워하셨다. 그게 삶이지 않았겠나?

 나무 등걸은 비록 장인(匠人)이 공들여 만든 귀한 의자이지만 나무 등걸에 온 몸을 맡기고 세상을 관조하는 여유야 말로 늘그막에 찾는 가장 행복한 즐거움이었을 것이다. 그 나무 등걸의 철학은 안 해본 사람은 모를 것이며, 안 본 사람은 이해도 못할 것이다. 그 나무 등걸의자를 집이 좁다고 그냥 내다버린 내자가 못내 좀 그랬다. 나의 철학이 사라진 것일까?

 내가 초교 다닐 때 아버지는 귀한 밭뙈기를 대토하여 선산(288=8,600)을 마련하였다. 그 중에 어머니 가묘(假墓)를 만들어 두고 곁에 누워 햇볕을 즐겼다. 아버지는 나무 등걸 의자가 없어서 가묘 곁 잔디 위에 누워서 늘그막에 행복을 찾으셨는가 보다. 나도 따를 수 있을까?

 흔들이 의자는 누구나 눕거나 기대면 편하고 좋다. 특히 나이 들어가면 갈수록 편안한 자리가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사람 삶 자체가 흔들이 나무 등걸 의자에 고스란히 담겨있지 않을까? 나만이 생각하는 안락함인가? 젊은이도 나무 등걸 의자를 보면 기대어 보고도 싶고 누어보고도 싶어지는 것이 사람일 것이다. 이렇게 한가하게 나무 등걸 의자를 논하다니?

 늦여름 쓰르라미 소리 울부짖고 동네 텃새 뻐꾸기가 우는 소리가 구슬프다. “~집 자~슥 다~ 죽고서 구구~구구어찌 흡사 사람음성 같다.

 나무 등걸 의자에 누운 어른들이 편해 보인다. 삶은 찰칵이다.

(20201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