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다마 계룡산” |
56. 안경집
이영백
시력이 참 좋았다. 초교 다닐 때 시력검사하면 2.0이었다. 너무 잘 보아서 탈이었다. 그렇게 평생 눈이 밝을 줄만 알았다. 그렇게 호롱불빛 아래서도 책을 읽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눈 사용 빈도는 더욱 많았다. 재미있는 소설읽기에 밤을 새웠다. 결혼하고 직장생활 할 때까지도 눈은 좋았다.
아버지의 안경집은 오늘날과 달랐다. 물론 아버지 안경은 경주 옥돌로 만든 돋보기였다. 안경집도 종이를 여러 번 바르고 발라서 황소 불알같이 길쭉하고 양 끝은 둥글었다. 닫는 방향도 오늘날 안경집과 많이 달랐다. 밑 부분에 속하는 곳에 두 줄이 나와 위 부분 꼭대기에 구멍을 뚫어 줄을 당겨 닫고, 중간을 밀어 열고 안경을 끄집어내어 사용하도록 되어있었다.
첫 직장을 그만 두고 대학교 편입을 하여 야간강좌에 수업을 들었다. 뒷자리에 앉았더니 칠판의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보다 늘 일찍 가서 앞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불편하기는 똑 같았다. 그때부터 어쩔 수 없이 안경을 맞추어 끼고 살아가게 되었다.
안경 끼는 순간부터 귀가 아팠고, 찬 곳에서 더운 곳으로 들어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잘 보기 위하여 안경을 쓰지만 많이 불편하였다. 더구나 안경을 쓰기 시작하면서 여러 개를 구입하였다. 시력이 안 맞거나, 안경다리가 부러지거나, 깨어져서 안경을 여러 개째 구입하였다. 그러다 보니 안경집 사용은 잘 하지 못하고 그냥 수북하게 쌓이기 시작하였다.
어느 날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안경이 거치적거려 벗어놓고 치료를 하다가 벗어 놓은 안경을 순간 잊어버리고 몸으로 짓눌러 박살나고 말았다. 아차! 나의 실수였구나. 그렇게 안경집이 많이 있었는데 사용법을 몰라 그냥 던져두고 수북이 쌓아만 두었다가 안경집이 갑자기 필요하였다.
이제는 물리치료 할 때도 사전에 벗어 안경집에 넣어서 가방에다 모셨다. 밤에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안경집은 챙기게 되었다. 새삼 안경집이 그렇게나 중요하였다.
세상의 일이 모두 그러하듯 당해 본 자만이 그 물건의 필요성을 느끼듯 늦게나마 안경집 필요성을 늦게나마 알았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안경집 고맙다. 계룡산 야싯골공원에서 때 아닌 “안경집” 고마움을 알았다.
(20201101.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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