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다마 계룡산” |
19. 야싯골공원의 개망초
이영백
아무도 날 반기지 않는데 야싯골공원 서편 초입에 들어 서자말자 나를 엔간히 기다린 듯 한아람 꽃이 나에게 오랜 애인처럼 안겨 들이닥치었다. 집단으로 이 꽃을 보고 있노라면 어쩜 여름에 피는 메밀꽃을 흠뻑 연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니 이름도 “개망초”라 실망하였다. 한자어는 없다.
개망초는 가까이서 하나를 크게 보면 마치 계란과 비슷하여 “계란 꽃”이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그 말은 참 좋게 보아줘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을 것이다. 개망초라니 그 이름부터 좀 그렇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품종인 “개나리”는 이름도 당당하다. 또 “개”자가 들어가는 식물이 많다. 개쑥갓, 개쑥부쟁이, 개별꽃, 개살구, 개오동, 개맥문동, 개구릿대, 개다래, 개연꽃 등으로 많이 있다. 우리나라 원산인 개나리를 제외하고 이 개자가 들어가면 한 등급이 낮다.
비록 낮은 계룡산 야싯골공원이지만 나를 붙잡는 꽃이 하필 개망초다. 본디 망국초(亡國草)이었는데 줄여서 망초가 되었고, 하필이면 이 꽃이 1899년 왜국(倭國)으로부터 철도가 처음 들어오면서 철둑길에 흐드러지게 피었다. 그러나 일찍 조상들은 나라가 망한다고“개망초”라고 불렀다.
지나는 길섶에는 애기똥풀, 쇠별꽃, 뽀리뱅이, 오리새 등이 피어 있지만 모두 외롭게 한두 포기뿐이었다. 그러나 나라를 망하게 한 개망초는 흙길 따라 걷는 길섶에 쭉 늘어서 나를 열병한다. 마치 메밀꽃 피어서 하늘의 하얀 잔별을 훅 뿌려 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그만 따라 가고 있었다.
누구는 소설 「개망초」에서 꽃이 너무 좋아 옛날 애인 젖가슴처럼 보여 머리를 파묻어서 좋아하였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아무것도 아닌 망초들이 집단적으로 계란을 프라이드해서 길 바닥에 엎어 세운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개망초를 마냥 따라가 보았던 것이 나도 모르게 부끄러웠다.
호박벌’이 날아와 암술에다 꿀을 빨더니 이내 ‘곤봉허리벌’들이 집단으로 왕왕거리고 꿀 채취 작업으로 일 벌이고 있다. 단지 14mm 허리 잘록하고 배가 볼록하여 곤봉과 비슷하다고 이름 붙여진 벌들의 잔치다.
이 공원의 개망초 수는 비록 적은 군집이었지만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20200829. 토)
'엽서수필 2 > 4다마 계룡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엽서수필2) 21. 공원과 인생 (0) | 2020.09.01 |
---|---|
(엽서수필2) 20. 야싯골공원의 메꽃 (0) | 2020.08.30 |
(엽서수필2) 18. 야싯골공원의 뽕나무 (0) | 2020.08.27 |
(엽서수필2) 17. 야싯골공원의 흰나비 (0) | 2020.08.25 |
(엽서수필2) 16. 야싯골공원의 야옹이 (0) | 2020.0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