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밭둑
이영백
시골에 처자와 총각이 연애를 한다. “우리 언제 다시 만날 까요?”총각이 애달아하면서 묻는다. “예~. 돌아오는 달 밭둑 무너지는 날 만나시더.”그래 밭둑 무너지는 날이 도대체 언제일까? 나도 모른다.
시골총각은 명색이 서당 다녔는데 설마 그런 걸 잘 모를까? 밭둑? 밭둑이 무너지는 날 있겠는가? 두더지가 땅 파서 먹이 찾느라 무너질까? 그 참 괴이하다. 도대체 밭둑 무너지는 날은 언제일까? 누가 좀 알려 주십시오.
총각은 머리를 짜낸다. 밭은 한자로 전(田)이다. 그래 맞다. 田자에 밭둑을 무너뜨리면 남는 글자가 무엇이지? 금방 알았다. 과연 며칠일까요? 田자 변두리에 둘러싼 큰 입구(口)를 무너지게 하니 남는 것은 열십(十)자다. 알았어. 이제야 알았어. 돌아오는 달 초열흘에 만나자는 것이네.
형산강 상류 남천 시래천에 미루나무가 줄 지어 자라니 연애장소가 적격이다. 이제 그 날짜 알았으니 누구네 집 처자인지만 알면 되네. 농촌에서 연애하기 참 쉬었다. 군데군데 미루나무는 잎이 피어 어른거리는 듯 거물 막 만들어주니 그 장소가 적격이었다. 나도 실행 한 번 해볼까?
시골밭둑에는 봄까치꽃이 지천으로 피었고, 애기똥풀이 꽃까지 피었으니 밭둑에 퍼질고 앉았다가는 바지에 뭐 싼 것처럼 노란 물들이기 십상이다. 냉이, 민들레가 저 보란 듯이 함께 산다. 처녀 바구니에 나물 캐 담기 바쁘네. 봄볕이 목덜미에 내리 쪼이는데 빨간 스카프 두르고 머리에 수건 묶어 흔들리는 엉덩이 이리저리 씰룩대면서 나물을 캔다.
밭둑에서는 저절로 모두 주인이 서로 다른 것처럼 경계선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이 밭에서 저 밭으로 구분 짓는 밭둑이 있다. 그 밭둑에는 뽕나무를 심었다. 그러면 나무 때문에 그늘이 생기므로 그에 맞는 농작물을 또 골라 심는다. 딱 어울리는 채소는 참깨나 들깨, 옥수수 등이다. 물론 밭 가운데는 소득이 높은 콩 농작물을 재배한다. 그러나 가끔 여러 가지 농사를 하려고 목화도 심을 수 있고, 혹은 어렵게 수수도 심는다.
밭과 밭 사이의 땅주인을 구분하는 밭둑이 있어서 저마다 재산을 눈에 드러나게 표현하기 좋다. 그런 밭둑에 총각이 퍼질고 앉아 풀피리 한 곡 부르는 여유도 즐긴다. 간혹 사람이 몰고 나온 소도 풀을 뜯기기도 한다. 덩달아 집에 키우던 강아지들도 봄맞이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송아지가 밭 가운데 들어서 날뛰니 주인장은 농작물 다친다고 야단법석이다.
아마도 돌아오는 달 밭둑 무너지는 날에 미루나무 아래를 엿보기나 할까.
(20200428)
'(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 > 늚이의 노래 1'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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