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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늚이의 노래 1

(엽서수필) 18. 산사를 찾아서

18. 산사를 찾아서


이영백


 내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산사(山寺)는 거창하고 유명한 산사가 아니다. 어떤 인연으로 우리 선산이 있는 곳에서 조금 더 울라 가면 조그만 암자가 하나 있었다. 그곳을 “삼정사(三正寺)”라 불렀다. 주지스님이 같은 마을에 보문댁 둘째 자제였다. 내가 선산에 들리면 지나치다가 반갑게 두 손으로 합장하여 주셨다. 그곳에 산사가 있는 것을 그렇게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나는 특정 종교인도 아니며 그곳에 깊은 인연도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형님들이 고향을 지키고 있을 때라 방임할 수 없었고, 간혹 산소에 들리면 큰형이 그 암자에 계셔서 인사차 들리곤 하였다. 덩달아 봄이면 채소밭 구경 겸 문안차 들리기도 하였다. 여름이면 요사 채가 매우 시원하여 짬을 내어 들리기도 하였다. 가을이면 감, 밤, 채소 등을 얻기도 하였다.
 우연히 나에게 암자의 현판 제작을 알아봐 달라고 하였다. 글 쓰는 동료에게 부탁하여 집자(集字)를 받았다. 목판제작소에 들러 현판을 새겨 그 암자에 갖고 가서 달아 드렸다. 그 후 고맙다는 인사 듣고 살았다.
 셋째형이 후두암으로 고생하다 5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큰형도 증세가 같아서 겁이 났던지 K대병원에 입원하여 수술 날짜를 잡았다고 연락이 왔다. 그리고 수술하였다. 수술이 잘 되었다고 집으로 가셨다. 그러나 수술후유증으로 위독하다기에 집으로 찾아가니 삼정사에 계셨다. 그때 누나 ㆍ 매형들, 형님 ㆍ 형수님들이 많이 찾아와 계셨다. 며칠 후에 그렇게 큰형도 그 산사에서 돌아가시고 말았다.
 암자는 이런 인연으로 자주 찾았던데 큰형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는 이래저래 찾기도 뜸해졌다. 그 암자도 사세(寺勢)가 가난해지기 시작하였다. 물론 그렇게 되어서 암자는 폐사되고 말았다. 한편으로 모처럼 종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가 맥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면서 폐사는 엄습한 곳으로 바뀌고 사람이 거주하지 않은 곳으로 변하였다. 낮에라도 혼자 그 앞으로 오르기도 겁이 난다. 막연한 생각이거나 비종교인으로서 비록 암자라 하더라도 산사 찾으면 마음을 안정시키는 곳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평소 남 혹은 신에게 의지하려는 마음이 없어도 기울어지는 경우가 생길 법한데 그만 끝나고 말았다.
 산지 아닌 구릉지인 밀개산에 산사가 있었다. 그러나 그 후 그렇게 그 주지스님도 돌아가셨다고 전해 듣고 말았다. 삶에 그 끝은 어디이며, 고향에 산사 있어 나이 듦에 의지하려 하였으나 펑 뚫린 푸른 하늘만 보인다.
(2020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