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논매기
이영백
논 농사짓는 사람들이 하는 일들은 그렇게도 많다. 그 많은 일들 중에 논매기가 있다. 못자리에서 옮겨 심은 것을 모내기로 하였으면 사흘 지나고 모가 사람 한다. 사람이란 잘 못 심어져 누워 있던 모를 똑바로 세워주면 힘을 얻어 진한 색을 띠고 뿌리가 정착하고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논매기는 모두 네 번한다. 초벌매기는 논바닥에 작은 풀까지 더듬어 주어야 하기 때문에 큰 일꾼들이 한다. 두벌매기는 사이에 큰 풀이 자라면 기계로 논매기 하는데 자동이 아니라 반자동인 기계를 이용한다. 기계는 이랑을 따라 밀면 써레바퀴가 돌면서 흙을 파헤치는 도구가 달린 것이다. 내가 직접 논매기에 이 기구를 이용하면 적합한 일이다. 아랫배에 힘을 주고 두 손은 자루를 잡고 밀었다 당겼다 하여야 이랑에 풀을 죽이게 된다. 처음에는 재미로 하다가 이것도 계속하면 허리와 팔이 아파 온다.
모내기 한 논의 모는 더운 열기로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잘 자라 오른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 쓴 깃발을 걸어놓고 마을에서 배동바지에 논매기를 시작한다. 이를 “두레”라 한다. 논둑에서는 동네 풍물패들이 농악을 쳐주어 논매기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 준다. 들판이 들썩인다.
반나절을 지나는 동안에 어느새 안주인과 여인네들이 새참 들고 나온다. 새참이래야 앉은뱅이 밀을 빻아서 반죽을 거치고 홍두깨로 밀어서 만든 칼국수다. 그 기에다 애호박 총총 썰어 넣고 간간이 맛난 작은 멸치가 섞이어 있다. 땀 흘리고 나서 칼국수 한 그릇을 거뜬하게 배부르도록 먹는다.
세벌매기는 논바닥의 흙을 벼 뿌리에 북돋아주기 위해 어른들이 하는 일이다. 이때 벼가 무척 자라나서 훼기가 논매는 사람의 얼굴과 팔다리를 긁어서 생채기를 낸다. 이렇게 힘들 때 논매기 노래도 함께 따라 다닌다.
우리 고향에서는 “나달이 먹는다.”하여 마을잔치가 시작된다. 집집마다 추렴하여 통 막걸리를 사놓고 돼지도 잡아서 푸짐한 잔치를 벌인다. 온 들판의 논마다 들어가서 네벌매기는 골 타는 일이다. 벼 알이 익으려면 골을 만들어 주어야 바람이 잘 통한다. 그래야만 풍년이 든다.
두레잔치인 나달이는 논바닥에서 그치지 아니한다. 마침내 논에서 나와 밤새도록 풍물 치면서 노동요를 부른다. 한 해의 농사가 잘 되어 집집마다 부자 되도록 기원하는 것이다. 머슴들은 논에서 풍년이 들어야 새경*을 잘 받을 수 있다.
(20200418)
*새경 : 농가에서, 한 해 동안 일한 대가로 머슴에게 주는 돈이나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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