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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이씨 시조/차성이씨 사료

[스크랩] 경주(慶州) 이 씨(李 氏) 향사(享祀) "표암제" 참석

<경주(慶州) 이 씨(李 氏) 향사(享祀) 참석>


2달 전(20160425)에 경주 이 씨 시조(始祖) 표암공(瓢巖公) 향사(享祀=제사)에 참석하였다. 마산 화수회 이용우 회장이 동행을 요청해와, 마산화수회원 몇 분과 함께 간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화수회 모임도 자주 가게 되고, 시조와 뿌리에 대한 관심도 생겨서, 시조 제사에도 참석하게 되는 것 같다.

전국 각지에서 일가들이 400 여명 참석한 것 같다. 근데 작년에 비하여, 참석자 수가 많이 줄어든 것처럼 느껴진다. 이게 추세적 현상인지, 일시적 현상인지 궁금하다. 내년에도 참석하여 시조 제사 참석자 수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다. 세월이 갈수록 씨족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경주 이 씨 시조 이알평(謁平)은 하늘에서 내려왔는데, 그 곳이 표암봉(瓢巖峰)이다. 표암이란 표주박 표, 바위 암이다. 즉 표주박 바위이다. 경주 이 씨 사당 뒤편 20미터 정도의 언덕 위에 있는 데, 그 모양이 마치 어린이가 누울 만한, 표주박 모양이다. 그래서 이 언덕이 표암봉(표주박 바위 언덕)이라 불리고, 그리고 시조는 표암공(瓢巖公)이라 부른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경주에는 6(경주 이, , , , , 설 씨 등 6성이 사는 집성촌)이 있었는데, 이것이 신라 6(斯盧六村)이다. 당시 경주 이 씨는 경주 북쪽을 흐르는 북천(알천)의 북쪽에 있는 양산촌((閼川楊山村)에 모여 살았다. 경주 6촌장이 기원전 57년 북천(알천) 둑 위에 모여,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고, 신라를 건국하였다. 유리왕 9(서기 32)에는 양산촌 마을을 에 급량부(及梁部) 마을로 이름을 바꾸고, 이 씨 성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이 양산촌(현재 경주 동천동)에 후손들이 재실과 사당을 지어, 시조 제사를 모시고 있는 것이다.

이알평 이후 경주 이 씨에 대한 기록은 사라졌다가, 고려말 목은 이색(한산 이씨)이 편찬한 익재공 묘지(墓誌)에서 중시조(이거명) 이후 계보가 밝혀졌다고 한다.

* 이거명(李居明) - 신라 말 진골 출신으로 소판 관직에 오른 경주 이씨 중시조.

* 이알평 이후 경주 이 씨에서 분적해 나간 이 씨(李 氏)

차성이씨(車城 李氏) - 시조 이위(李渭)

합천이씨(陜川 李氏) - 시조 이개(李開)

우계이씨(羽溪 李氏) - 시조 이양식(李陽植)

아산이씨(牙山 李氏) - 시조 이주좌(李周佐)

재령이씨(載寧 李氏) - 시조 이우칭(李禹偁)

원주이씨(原州 李氏) - 시조 이반계(李攀桂)

진주이씨(晋州 李氏) - 시조 이영재(李永榟군재(李君榟) 형제

장수이씨(長水 李氏) - 시조 이직간(李直幹 - 李林幹)








출처 : 立志成事(이기우)
글쓴이 : 희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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