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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이씨 시조/차성이씨 사료

[스크랩] 오목대와 만경대

오목대(梧木臺)

 

1335년에 태어나 1408년 73세 까지 살다간 이성계.
정몽주,정도전, 최영과 함께 고려 말기를 지내다 조선을 창건한 사람.

 

이성계는 30여 년 동안 전쟁에 나아가 한 번도 패하지 않은 장군으로
홍건적, 원나라, 왜구, 여진족을 물리쳐 고려 말 극단적인 혼란에서
한민족의 구세주 역할을 했고

특히 전라북도 남원의 황산대첩(1380년)에서
아군보다 훨씬 많은 수의 왜구를 섬멸함으로써
불세출의 영웅다운 모습을 보였다.

 

운봉 황산(荒山)왜구 소탕을 위해 출전 할 당시 타고 간 명마가 사자황(獅子黃)이란 말(馬).

 

사자황은 수사자처럼 탐스러운 갈기와 사나운 눈매를 가졌고
황색 바탕에 검정색 점무늬가 있는 용맹스런 얼룩말.


이성계는 아끼던 여덟마리의 애마가 있었습니다.

          『횡운골,유린청,추풍오,발전자,용등자,응상백,사자황,현표』

 

 

 

 

이성계의 상대는 가장 거칠고 포악했다던 왜구 「아지발도(阿只拔都)」
어린이를 잡아 내장을 꺼내는 등 잔인하고 포악한 왜놈의 수장.
기마대만 3000여기가 넘었고 총 병력 수는 1만명이 넘었을 정도로 세력이 강했던 왜구.
고려사에서는 당시 '왜구의 갑옷에 활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전하고 있다.

 

신궁으로 유명한 이성계가
트레이드마크인 붉은색의 활로 왜놈 아지발도의 투구를 정확히 맞혔으나
투구 장식만 떨어졌을 뿐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 
다시 이성계는 두 번째 화살로 투구 끈을 맞춰 투구를 벗겨냈고
이어 날린 세 번째 화살을 얼굴에 적중시켜 승리할 수 있었다고 전합니다.
이 황산전투에서 1400여 마리의 말을 노획했다 합니다.


남원 운봉의 황산에서 왜구들을 이렇게 대파하고
승전을 기리기 위한 자축행사를 벌인 곳이

전주 한옥마을 앞 동산  「오목대」입니다.

 

훌륭한 장수로써의 면모와 자기과시의 기회가 되어
全州李氏들을 모아 승전가를 부른 곳.
지금 부터 약 636년 전에 왕이 되기위한 야심을 드러낸 장소이기도 하지요.

 

 

 

 

 

정몽주는 1380년

이성계가 자신의 조상이 살던  전주 한옥마을 들머리에 있는 오목대 (悟木臺)에서
옛날 한나라 고조가 불렀다는 대풍가 (大風歌)를 부르며
쿠데타의 야심을 드러내자 앞산의 만경대로(지금 남고산성) 달려가
오목대를 내려보고 임금이 있는 개성 하늘을 쳐다보며 나라 걱정을 했다.

 

이러한 상황에 분노한 정몽주는 남고산성 만경대에 漢詩 하나를 남겼는데

 

 

 


어떻든 12년 뒤엔 개성에서
이방원의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로 시작하는 하여가 (何如歌)에
“이 몸이 죽고 죽어 열백번 고쳐죽어”로 시작하는 단심가 (丹心歌)로 대꾸하였고
이성계-이방원 부자와  맞서다 목숨을 잃고 만다.


고려 말 친원파와 친명파 사이의 대립이 치열할 때
이성계는 명나라를 치러 가던 군대를 압록강 하류 위화도(威化島)에서 회군을 단행하여
개경에 돌아와 최영장군과 역성혁명을 반대하던 정몽주를 비롯한 온건 개혁파를 제거하고
우왕을 폐위한 후 정도전 등의 추대를 받아 공양왕의 왕위를 물려받는 형식으로
1392년 7월 새 왕조의 태조로서 왕위에 올랐다.
1392년 개경(개성)에서 조선을 건국하고
1394년 10월에 수도를 한양으로 천도하였다.


이러한 역사의 시발점이 오목대 아닌가 생각됩니다.

 

      

 

 

 

 

출처 : 솔밭
글쓴이 : 박상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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