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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이씨중앙대종회 공지사항

[스크랩] 제2회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 특선("작은 손" 이영백) 당선소감 및 작품 안내

                                                                  

제2회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부문 특선 당선소감

                                                                               *이영백

  지난 해(제1회 매일시니어문학상) 논픽션부문에 이미 우수수상을 받았고, 금년 제2회에는 응모를 하느냐마느냐 고민을 하다가 마감 전, 전일에 원고를 제출하고서 잊어버린 일이었다. 6월 말에 느닷없이 매일신문사라며 응모한 수필부문에 특선으로 선정되었다고 알려 왔습니다.

그리고 오늘(=201677일 목요일) 매일신문이 우리 집 대문간에는 이미 새벽시간에 도착하여 있었습니다. 겨우『수필과지성 아카데미』에서 3학기 동안 수업하였을 뿐인데 수필부문 특선에 이름이 올라 있어서 너무나 감사할 뿐입니다. 사실 응모는 하였지만 전국규모라서 무모한 실력으로 별기대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19기 조태영님의 축하인사말에 무척 생경스러웠고, 18기 정재우님의 문자에는 힘을 얻었습니다. 더욱 노력하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2회 수필부문에 자그마치 301편(최우수상 1편, 우수상 5편, 특선 10편 등 총 16편)중에서 뽑힌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입니다. 또한 평소에도 저를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2016 77일(목)

수필과지성 창작아카데미      청림/이영백 올림.


※부족한 저의 글을 여기 이곳에 올립니다.

매일신문사 제2회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부문 특선

작은 손

이영백

 

 어쩌다 십남매 막내로 태어나 몸꼴이 아주 작았다. 얼굴부터가 그렇다. 사진을 찍어 둔 사람들의 얼굴사진을 보면 몸꼴은 작아도 얼굴이 크게 잘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나처럼 몸꼴도 작고 게다가 얼굴까지 작으니 그야말로 볼품없이 낳아 준 것에 불만이 항상 많았다. 얼굴만 작은 게 아니고 발도 작고, 다리도 짧았다. 자연히 키도 작았다.

  나는 손이 매우 작았다. 나이 든 지금도 아이 손 크기였다. 작은 손으로 글씨를 쓸 때 내리 긋는 것을 똑바로 잘 그었다. 작은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였다. 이제 작은 손이 예쁘다고들 하였다. 비록 몸꼴에서 작게 달린 손이지만 엄지와 검지로 펜과 볼펜을 쥐고, 하고 많은 글씨를 썼다. 교사를 하면서 원지를 줄판에 얹고 많은 글을 철필로 쓰고, 또 썼다. 하물며 칠판에 쓴 글씨는 교직 8년 동안 거개 고학년 담임을 맡아서 얼마나 글자를 많이 썼는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을 하면 제자들에게 추억을 심어주기위해 학기 초부터 준비된 학급신문에 소식을 실어 주었다. 글짓기를 장려하기 위해 잘 되었다고 생각한 글을 선정하여 학급 신문에 실어 준 것이었다. 저네들이 편집하고, 내가 원지 긁어 주고 등사를 하였다. 본인 이름이 학급신문에 나온 것을 그렇게 기뻐하던 것이 너무 즐거워 교육이랍시고 자주하였다. 덩달아 작은 손으로 긁어 준 원지에 등사판 학급신문이 시골이라도 작은 학교 내에서 큰 감동을 주었다.

  고학년이 되면 칠판 가득 판서를 하고, 손가락에 묻은 백묵가루를 털면서 제자들을 사랑하였다. 스승의 날 행사를 자기 주도적으로 실시하였다. 교내 선생님 모두를 초청하여 장기자랑도 하고 고사리 손에 기념품(시골이라 삶은 계란 하나, 삶은 고구마 하나, 사과 한 개 등)을 하나씩 들고 와서 다른 반 선생님들에게 선물이라고 드렸다. 당시 엄연히 법적으로 금지된 ‘스승의 날’행사가 제자들로부터 자발적으로 행하였다.

  그때 그날 “스승의 날”행사를 잊지 못하고 현재까지도 작은 기념품과 꽃다발도 함께 보내오고 있다. 정말 고마울 뿐이었다. 작은 손으로 칠판에 커다랗게 ‘제OO회 스승의 날’을 썼을 때 제자들이 큰 글씨에 감동을 받았는지 환호를 보내던 것이 지금도 귀에 들리는 듯하였다.

  작은 손을 가진 나로서는 늘 부족하였다. 돈을 헤아릴 때 손아귀가 작아서 만 원짜리 일백만 원을 두 번 나누어 헤아렸다. 내자는 이런 광경을 보면서 기가 찬지 나를 가여워보기도 하였다. 돈 헤아리는 것이야 몇 번 나누어 헤아려도 되겠지만, 무거운 물건을 못 들어 주면 큼직한 손을 가진 내자가 가여운지 함께 번쩍 들어 주었다.

  작은 손, 손바닥에 손금이 그어져있다. 남자는 오른 손금을 본다고 하였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오른손바닥을 펴보니 생명선이 중간에 끊어지고 다시 이어졌으나 그래도 짧았다. 두뇌 선은 굵고 길었다. 자식 선은 위로 향하면 아들이고, 아래로 향하면 딸이라는데 나는 아들만 둘 있다. 수성구, 태양구, 토성구, 목성구는 모두가 없거나 짧았다. 재미로 보는 것이지만 믿거나 말거나 걱정이 앞섰다.

  작은 손, 손가락에 금이 있다. 사람마다 엄지는 두 금이요, 검지, 중지, 무명지, 약지에는 모두 세 개씩 금이 있다. 나는 특이하였다. 약지에 금의 수는 세 개이지만, 손바닥 쪽 금의 간격이 아주 짧았다. 손가락을 접어서 약지를 바깥에서 보면 세 마디가 분명히 있었다. 형· 누나들 손바닥을 조사하여 보았다. 넷째 누나가 나와 닮았다. 아버지 손의 약지와 똑같다고 넷째 누나가 말해 주었다. 아버지· 넷째 누나· 나 세 사람의 약지 안쪽 금 간격이 특별히 희한하게도 작았다. 아버지는 농부요, 목수였다. 넷째 누나는 재주가 있었다. 나도 덩달아 공부는 잘하였다.

  몸꼴에 맞춰서인지 작은 손을 달고 살았다. 밥을 먹고 사는 데 불편한 것은 없었다. 작아도 글씨 예쁘게 쓸 수 있었고, 그림 잘 그릴 수 있었다. 단지 돈을 한꺼번에 쥐고 헤아리기는 불편하였다.

  작은 손이지만, 시골에서 낙엽 긁어모으고, 솔 갈비 모으는 데는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논에 모내기와 벼 베기도 잘 하였고, 밭에 풀 뽑고 밭 매는 것도 잘 하였다. 소꼴을 위한 풀베기도 잽싸게 잘 하였다. 비록 작은 손이지만 못하는 일은 없었다.

  작은 손을 가졌지만 행복하였다. 두툼한 손을 가진 사람과 악수를 하면 내 손은 항상 쏘옥 들어갔다.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였다. 작은 손이라도 못할 일이 없기에 그렇게 부끄럽기만 한 작은 손이 아니라는 것을 늦게나마 깨달았다.

  비록 작은 손에 짧은 손가락을 가졌지만 초등학교 상장을 예쁜 붓글씨로 써 주었을 때 학생들이 매우 좋아하였다. 작은 손을 가진 것이지만 행복하였다. 작은 손으로 항상 깨끗하고 아프지 않고 무엇이라도 잘 하였다.

  교육대학 다닐 때 풍금을 연습하는데 약지가 짧아서 애국가 4부합창곡을 잘 치지 못해 까딱했더라면 입학은 했어도 졸업을 못할 뻔하였다. 4부합창곡을 연습하는데 한 달 동안 피나는 노력을 하였다. 짧은 손가락을 억지로 늘여가면서 남모르게 피나는 노력의 결실로 졸업 기악과목 애국가 점수를 98점이나 받았다. 작은 손에 짧은 손가락을 가졌지만 노력으로 성공하였다.

  비록 작은 손, 짧은 손가락으로 애국가 4부곡을 다 쳐내고 나니 기악교수님 왈, ‘이군 정말 노력 많이 했네. 그동안 수고 했소, 합격!’ 내 평생 작은 손, 짧은 손가락 때문에 교수님으로부터 들은 칭찬이 나의 평생 좌우명에‘하면 된다.’는 자신을 얻었다. 󰃁

출처 : 수필과지성
글쓴이 : 靑林 李泳伯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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