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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20100의 습작 시

[스크랩] 청림/20100산문시-ㅅ)1216.수촌手寸

청림산문

1216. 수촌手寸

이영백

cafe.daum.net/purnsup


익히 알고 계약을 하고 서로 확인하는 것으로

우리는 도장圖章이라는 것을 찍는다.

도장은 그 역사가 얼마나 되었을까?

도장은 일제강점기가 들어서고 사용하게 되었다.

앞 서 선조들은 수결手決이라는 것을 사용하였다.


계약을 하고 이름을 쓰면서

평소 자기 이름처럼 비슷하게 수결을 정하여

나무로 도장처럼 새겨 두었다가 이름 밑에 찍어서 사용하였다.

일반인들은 수결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노비들도 계약이 필요하고 사용할 때 수결을 사용하였다.

노비수결은 왼손의 가운데 손가락의 첫째와 둘째 마디 사이의 길이를 재어

그림으로 그려 도장 대신으로 썼다.

이것을 수촌手寸*이라 하였다.

쉽게 말해 왼손 가운데 손가락 첫째마디에서 둘째마디 사이의 길이가

글자를 모른 노비들의 수결역할이었다.


남노男奴는 왼손으로 사용하였기에 좌촌左寸이라 하였고,

여비女婢는 오른 손을 사용하였기에 수장手掌이라 하였다.

일제침략기에 여자들은 지장指掌, 지절指節이라고도 하였다.


노비의 수를 헤아릴 때도 명名이 아니고, 구口로 표시하였다.

우리 집 호적단자戶籍單子에 보면 노비奴婢가 있었다.

우리 집 여비의 이름은 석이石伊라고 하였다.

순 우리말로는 바로 ‘돌이’였다.

(청림/20100. 20160521.)

*수촌手寸 : (역)노비의 수결. 왼손의 가운데 손가락의 첫째와 둘째 마디 사이의 길이를 재어 그림으로 그려 도장 대신으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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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 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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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泳 伯 (1950∼) 경주産. 대구거주. 호 靑林. 필명 청림/20100.

●교육자 ●교육행정가 ●보학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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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전공 교육학석사

○차성이씨중앙대종회 사무총장

현) e이야기와 도시 대표

현) 영남이공대학교 50년사 편찬위원

●2012년 월간 한비문학 신인문학상 수필부문수상으로 수필가 등단

○한국한비문학회 회원

○수필과지성 창작아카데미 수료

●매일신문사 제1회 매일시니어문학상 논픽션부문 우수상 수상(2015년 7월)

출처 : 청림/20100/수필가 이영백
글쓴이 : 2청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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