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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이른 아침에

[스크랩] (과제5. 브레이크)자잉고/청림/이영백(18기)

●수필과 지성 아카데미 과제 5. 브레이크(4/2)

자잉고

靑林 이영백(18기)

 

  기계 다루는 것에 겁내하는 기계치로 자잉고*타기를 그렇게 무서워하여 잘 타지 못한다. 겨우 탄다고 해도 걸터앉아 핸들을 잡고 페달에 힘을 주어서 천천히 발로 젓는 수준이다. 균형을 못 잡으면 대책 없이 넘어지며 쳐 박히고 만다. 오늘날까지도 기계치인 것은 자명한 일이다. 예순일곱이 되었는데도 타기가 겁부터 난다.

 도회지 마당 좁은 집에 살면서 작은 물건이라도 한 개 들여 놓을 자리가 없는데 자잉고를 떡하니 갖다 세워 놓은 것이다. 자리를 차지하면서 사용도 안 하고 그대로 방치하였으니 내자로부터 핀잔을 듣고 만다.

“너무 복잡한데 치우든지, 갖다 버리든지 하이소 좀!”

 자잉고 한 대가 1층 글 창작소 앞에 나이든 나처럼 오래 방치되어 있었다. 혹시나 쓸 수 있지 않나 확인을 해보았다. 역시 못 쓰는 물건이었다. 그래도 관심이 가서 무턱대고 수리 점으로 끌고 갔다.

“이것 쓸 수 있는지 좀 봐 주이소!”

“바람 없네.”

 수리 점 아저씨는 반말조로 대답을 날렸다. 그러면서도 뒤 타이어에 바람을 넣으며 확인하고서는 무시 고무가 삭았다고 한다. 무시 고무를 다시 갈아 끼우고 바람을 넣어 주었다. 바람이 빵빵하게 차올라 부풀었다.

“얼마예요!”

“그냥……됐어요. 가소!”

 자잉고 수리 점 주인은 처음부터 돈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를 응대하기가 싫었던 모양이었다. 돈을 안 받고 그냥 가라기에 그만 눈물이 나오도록 고마워서 타지도 않고 나와 버렸다. 사실은 타기가 불안하기도 하였다. 신축아파트 짓는 단지 곁으로 끌면서 집으로 올라왔다. 한참을 끌고 오다가 하도 궁금해서 올라타 보았다. 방금 전에 바람을 넣었는데 바람이 그새 모두 사라져 버렸다. 다시 수리 점까지 끌고 갔다.

“아저씨! 방금 넣은 바람이 모두 빠졌는데요?”

 수리 점 아저씨는 다시 확인하고서 타이어가 삭아 그렇다고 했다. 타이어를 갈아 넣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그래도 주운 것이 아까워 버리지 못하고 뒤 타이어를 돈 주고 새것으로 갈아 끼웠다.

“얼마예요?”

“팔천 원!”

 이번에도 반말 조이었다. 나를 아직도 키 작은 어린애로 보이는지 모르겠다. 팔천 원을 계산하였다. 그래도 주워서 횡재(?)한 이 물건을 집에 갖다 두자고 생각하였다. 어디에 세워 두든 열쇠는 필요할 것인 줄 알았다.

“아저씨! 열쇠는 얼마예요?”

“오천 원!”

 역시 혀가 짧았다. 임자 없던 버린 것을 주웠는데도 용돈 중에서 거금 일만 삼천 원을 투자하였다. 이제는 타지도 않고 고이 끌고 집으로 가져와 세워 두었다. 내자가 비싼 물건 한 대 그저 생겼다고 좋아하였다.

 

 자잉고 하면 나에게 징크스가 있었다. 중학교 진학을 못하면서 서당에 다니고 있을 때이었다. 한 살 아래인 조카가 어느 날 나를 찾아 와서 느닷없이 질문을 해댔다.

“삼촌! 탈줄 알아요?”

“못 탄다. 한 번도 타는 것을 배워 본적이 없네.”

“아이고, 삼촌도!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 탈 줄도 알아야지요.”

“몰라, 없어서 배우려고도 못해 봤지.”

 그랬다. 당시는 하도 귀해 마을에서도 보기 어려웠다. 우편배달부나 농원(農園)잡지 배달아저씨, 이동 이발사아저씨 말고는 거의 볼 수도 없던 그런 시대의 참 귀한 물건이었던 것이다.

 조카는 느닷없이 삼십 원을 주고 하루 종일 빌려 왔다. 넓은 터도 따로 없었다. 경주남천 시래 갱빈에 화물차 바퀴자국 따라 잘 다져진 자갈길에서 타는 연습을 하였다. 조카가 뒤에 붙들어 주어서 올라 앉아 낑낑대었다. 하루 종일 배우니 어느 정도 균형이 잡히고 혼자서도 탈 수 있게 되었다. 정말 배워서 타 보니까 매우 재미가 났다.

 그런 후에 혼자서 빌려 타기도 하였다. 제법 타는 재미를 느껴서 불국사기차역에서 조양 못으로 내려오는 비탈길을 곧잘 타고 내려 왔다. 내리막길이라서 힘도 안들이고 브레이크만 잘 잡고 달려 내려오면 신나는 것이었다. 마치 겨울 비탈진 눈길에 비료포대로 호시를 타는 것 같이 즐거웠다.

 일요일 오후 불국사기차역에서 조양 못가의 내리막길을 브레이크만 잡고 바람 맞으며 달려내려 온다. 마치 세상의 재미를 나 혼자 다 느끼는 것 같다. 쌩쌩 달리니 봄바람까지 내 뺨을 어루만져 주어서 정말 기분이 최고다. 못 위 푸른 하늘에 황새가 날고, 못 속 참개구리 울어 준다. 새우도 나를 반겨 주듯 물위에 오골 오골 모인다. 이들이 자잉고 타는 소년을 반겨 주는 주빈이요, 묘기를 보아 주는 관객일 것이다.

 마침 물이 찰랑찰랑하게 차 있는 못가로 달려 내려왔다. 길바닥에 볼록 튀어 오른 돌멩이에 부딪히는 바람에 튕겨져서 못물 속으로 직행하였다. 전 속력으로 신나게 달리다가 내리 쳐 박혀 버렸다. 물에 빠져서 잠시 동안 죽은 물고기처럼 되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물에서 허우적거리며 끌고 나왔다. 이런 일을 겪은 후로 징크스가 있어 타는 것을 아주 겁내 하였다. 이후 탈일도 거의 없었고, 없어서 타지도 못했다.

 

 이제 6학년 7반에 이르러 비록 주운 것이지만 도회지 도로에서 타려니 겁이 더욱 났다. 오랜만에 브레이크 달린 자잉고에 앉아서 시도해 보았다. 핸들 균형도, 발로 젓기도 잘 안 되어 포기하고 고이 모셔 둘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연을 모르는 내자는 운동젬병이라고 나를 나무라댔다.

 초등학교 운동장에 가서 연습하라고 한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연습도 하지 않고 그냥 세워둔다. 내자가 비 맞는다고 비닐을 얹어 덮어둔 것이다. 세워둔 것이 균형이 맞지 않아 방 안에서도 쿵하는 소리가 내 귀에도 들리더니 바로 넘어진 것이다. 내자가 투덜거리는 소리는 잔소리가 아니고 정말 맞는 소리다. 그 자잉고가 마치 멈춰 설 줄 모르는 브레이크 없는 내 신세다. 진즉에 필요 없는 것은 버리는 것이 편한 것인데 말이다.

“갖다 버리든지, 아니면 팔아버리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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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잉고 : 두 다리로 페달을 밟아 바퀴를 돌림으로써 움직이게 하는 탈것. 한자로 자전거(自轉車)를 ‘자잉고’라 부른 사투리.

(20150405. 청림/20100.)

 

이영백(李泳伯).1950년∼. 경주産. 호 靑林. 대구교육대학 졸업.

전)초등학교 교사·연구주임교사(8년).

전)중·고등학교 자원봉사 국어교사(2년).

전)영남이공대학 기획·홍보과장 및 교무과장 역임(26년 4개월).

현) e이야기와 도시 대표.

♣기별 처-業務:752-0096, 自家:755-1640, 손기별:011-806-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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