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엽서수필 5/또천달 형산강

(엽서수필 5) 또천달 형산강 78. 잊어버린 강, 신라 형산강

 

엽서수필 5 : 년의 빛 흐르는 형산강

78. 잊어버린 강, 신라 형산강

이영백

 

 그렇게 강을 떠났다. 앉은뱅이밀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떠났다. 도회지로 떠났다. 언제나 떠나지못할이라고 생각하였다. 강을 잊어버리려고 하였다. 머릿속 한 부분에서 앓고 있던 것, 조금은 짧은 자토라기 시간에서라도 생각에서 해제되고 싶었기 문이었다.

 나는 강에서 태어나고 자랐기에 강을 떠나면 죽는 줄만 알았다. 그러나 사람이 참 쉽고도 얄미운 것이다. 어느새 강을 떠나도 내가 살 수 있다는 만용이 현실화 되었다. 진정 강을 떠나 살 수 있는지 자문자답도 하였다.

 이미 머릿속에 오래 깃든 강을 잊어버리려고 하여도 그게 그리 쉽지 않다. 형, 누나, 조카, 질녀, 생질, 생질녀, 당질, 당질녀 등 얽히고설킨 것이 인간관계요, 척간의 피붙이들처럼 어찌 순간에 잊고 산단 말인가?

 그랬다. 잊을 만하면 나이차가 많은 형님, 형수님 돌아가시고, 조카 등이 시집ㆍ장가갔다. 인간의 통과의례를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하나같이 잊어버린 것을 다시 얻은 것이요, 얻은 것이 다시 잊어버리는 것이다.

 본관을 찾아 이론상 정립하는 것도 강을 지나다니며 찾아야 하였다, 집성촌 판관공파 마동, 호군공파 마동ㆍ시래동, 부사공파 효현동, 정랑공파 포항 청하면 필화리, 교리공파 부산 동래 미남동 등 차비를 들여도 찾아갔다.

 세상 살면서 그렇게 쉽사리 강을 잊어버리고 살 수가 없다. 내가 잊고자 하는 것은 현실이요, 미래에 닿으면 모두 제자리로 돌아오곤 하는 타임머신을 탄 기물(奇物)같다. 강을 잊어버릴 수가 없다. 결코 잊어버릴 수 없다. 그냥 뇌리에서만 맴돌고 완전히 잊을 수가 없다. 다시 강을 만난다.

 남천의 짜지락한 물줄기는 겨우 명맥을 잇고, 서천의 물은 가장 직접적으로 모아 둔 합수가 된다. 모량천, 기린천이 서천에 모여들고, 덕동ㆍ보문호에서 북천(알천)으로 흘려주는 물로 서천 애기청소에 모두 모인다. 서천을 벗어나 포항으로 내달으며, 안강 칠평천, 기계천 물이 합수하여 강동면을 스쳐 포항언저리로 향한다. 여러 곳의 물들이 합수하면 강물이 된다. 그 강물이 POSCO곁으로 지나면 너른 동해(東海)다. 어린 날 남천에서 흘러가던 물의 끝이 어디인지도 몰랐는데, 나이 먹고 나니 저절로 알게 되었다.

 잊어버리지 못한 강, 함께하지 못하여 강을 잊은 줄 알았다. 나고, 자라고, 애절한 삶을 살아온 “또 천년의 달빛 흐르는 신라의 형산강”이다.

(20220807. 일. 입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