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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4

(엽서수필 4) 수그사이 환희 34. 셋째형 초산에서 생환하다

 

엽서수필 4 : 수필과 그림사이, 그 환희

34. 셋째형 초산에서 생환하다

이영백

 

 셋째형은 전쟁터로 가기 위하여 자진 입대하던 날이다. 동네에서 어깨걸이로 “축 입대”라는 문구의 어깨띠를 걸치고 하주종일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다니며 축하받고, 훈련소로 갔다. 셋째형은 참 용감하였다. 국가 부름도 받기 전에 스스로 자진입대를 실행하였던 것이다.

 공병부대가 있는 김해훈련소에 갔다. 공병(工兵)에는 시설공병은 엔지니어, 전투공병은 컴뱃 엔지니어 혹은 새퍼(Combat Engineer/Sapper)라 한다. 전투공병은 “공병”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정예전투 병력이다. 전투공병은 병과가 생길 때부터 그래왔다. 당장 단어 뜻부터가 전투와 공병 임무를 동시에 한다는 뜻이다. 근대의 전투공병은 도끼와 불붙은 수류탄을 들고 적 전열정면으로 돌격해 목책을 때려 부수고 수류탄을 투척해 돌파구를 여는 위험천만한 임무를 맡던 사람들이다. 셋째형은 전투공병이다.

 셋째형은 전쟁이 발발하자 자원입대한 용기는 다른 뜻이 있다.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어차피 전쟁이라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보다 먼저 입대하여야 하는 것이 낫다. 그것은 군인으로서 전투에 임하면 노하우가 생겨서 생존확률이 더 많이 얻으므로 일찍 입대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1950년에 자원입대하여 1957년 봄에 제대를 하였으니 만7년을 복무한 셋째형이다. 복무 중 낙동강까지 밀려 내려왔다가 인천상륙작전 후 선봉부대인 청성부대로 압록강 초산까지 진격하였다. 압록 강물을 대통령께 헌수한 부대다. 그러나 1ㆍ4후퇴 시 미리 피하지 못하여 부대는 셋째형과 다른 병사 한 명 등 두 사람만 살아 돌아왔다. 1주일간을 나무 위에서 버티는 동안 자신의 소변을 받아 목을 축였다. 일주일 후 나무에서 내려 물을 가장 원했다. 골짜기 흐르는 물을 마음껏 마시고 정신 차리고 보니 물이 아니라 전우의 주검에서 흘러내리는 핏물이다. 함흥으로 와서 후퇴하여 재편성 받았다. 불굴의 의지로 전투에 다시 임하였다.

 셋째형은 대한민국 육군에서 미군에 편제하여 근무한 적도 있다. 영어는 몰라도 미군과 함께 생활하면서 회화는 하였다. 16개국 지원 병사들과 직접 접촉하고 그들 지원에 감사하면서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산전수전 모두 겪고 만기제대 하였다. 셋째형은 아들 둘, 딸 넷을 낳아 잘 길렀다. 그러나 후두암을 얻어 예순다섯에 돌아가셨다.

(20211113. 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