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수필 4 : 수필과 그림사이, 그 환희 |
33. 둘째형 속초복무 생환하다
이영백
아버지의 철학은 장자만 글을 배워 가문의 행사 때마다 남에게 글 빌러 가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둘째형은 학교를 다니지 못하였다. 아버지 따라 목수 일을 배웠다. 또 농사를 지었다. 6ㆍ25전쟁이 발발하자 4Km떨어진 북토리로 피난 가면서 둘째형만 데리고 갔다. 큰형은 장가가서 살림났고, 셋째 형은 전쟁발발하자 가장 먼저 자원입대 하였다.
둘째형은 북토리에서 자리 잡고, 농사지었다. 이발 기술을 배워 동민들 이발을 하여주었다. 뿐만 아니고 낮에 농사지으면서도 밤에 한글을 독습(獨習)하여 읽는 것은 물론 쓰는 것까지 익혔다. 사이에 결혼하였다. 전쟁 중에 20세 넘는 남자는 모두 징병 당하였다. 둘째형은 자원은 하지 아니하였지만 영장 받고 군대에 입대하였다. 훈련 마치고 배속 받은 곳은 전쟁 중인 강원도 속초였다. 소총부대는 매일 전쟁에 투입되었다.
매일 전란에 매진하였다. 1년 2개월이 지나면서 휴가를 처음 받았다. 낯선 강원도에서 산등성이마다 골고루 전투하였다. 휴가 맞아 고향으로 버스타고, 기차타고 큰집으로 왔다가 살림집이 있는 북토리로 발길을 돌렸다.
전쟁이 발발하였지만 결혼한 후 입대 하였기에 형수 혼자 아들 낳아 길렀다. 일주일 휴가는 순간에 사라진다. 못 다한 농사일을 마쳐 두고 다시 전쟁터로 떠나야 하였다. 그렇게 국가에 충성하는 군인이 되어갔다.
어머니는 둘째아들 강원도 속초 어느 전투지역에서라도 살아 돌아오길 학수고대 하였다. 전쟁 중에 아들 셋을 모두 군대 보낸 부모 심정을 누가 알리요? 동해남부선 불국사기차역에서 부산 쪽 가는 신호기마을에서 철길 밑에 학자수 우물물을 새벽마다 길어 정안수 놓고 무사귀환 빌었다.
둘째형은 독습으로 한글을 깨쳤기에 군사우편으로 건강히 잘 있다는 소식을 비록 전장 터이지만 늘 전하여 온다. 그러나 아버지 글 못 읽어 우편배달부의 도움으로 귀로 읽는 편지에 대신한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투장에서도 둘째형은 참 용하게 살아서 전쟁 끝나고 만기제대로 돌아오던 날은 어깨가 가벼웠다. 자랑스러운 금수강산을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고 지켰다는 자긍심으로 국가에 충성한 것이다.
전쟁이 발발하면 가장 무서운 것이 쳐 들어오는 적도 적이지만, 내부적 단결만이 살 길이다. 둘째형은 전쟁 속에서도 안 다친 것이 정말 만세다.
(20211111. 목. 농업인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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