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수필 4 : 수필과 그림사이, 그 환희 |
10. 빨간 돈 5원 벌다
이영백
사람 살아가는 데는 돈이 필요하다. 돈 버는 행위를 최초로 한 일은 나의 기억에서 영원히 저장되어 있다. 시골에서는 돈이 필요 없다. 돈사용할 곳이 없으니 그랬다. 손님이 방문했다가 빨간 돈 1원을 손에 쥐어 주어도 사용할 줄을 모른다. 점방이나 물건 파는 곳 없는 곳에 살았기 때문이다. 만들어 준 옷 입고, 신발 사 준 것 신고, 겨울 손 시리다고 벙어리장갑 짜 준 것 등으로 사용하면 돈의 필요성을 몰랐다.
돈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사용하는 물건을 사거나 팔 때 현물이 아닌 간편하고 가벼운 지전(紙錢)으로 대가를 치러주던 가치인 것이다.
태어나서 일곱 살에 세상 최초로 돈 벌게 된 것은 아주 우연찮은 경우다. 동네 고작에서 친구들과 구슬치기 하고 놀았다. 처가 가는 신랑이 다가왔다. 새신랑인지 한복에 코트 입고, 가방을 두 개 들었다. 처가가느 길이 멀어보였다. 새색시는 연분홍치마에 붉은 윗저고리 입고 친정 가는 모양이다. 여러 친구들이 있는데 하필 나에게 가방 옮겨 주면 5원 주겠다고 제안하였다. 얼른 지게 가져와서 가방 얹어 지고 뒤따랐다.
남천 시래거랑으로 물이 흘러가서 조심스레 돌다리를 건넜다. 용케 안 미끄러지고 잘 건넜다. 중방 입구 큰 나무 그늘 밑을 지나 상보로 흐르는 도랑 따라 흙길을 뚜벅뚜벅 걸었다. 점점 우리 집이 조그맣게 보였다. 앞에 갈대언덕이 보였다. 잠시 쉬어 가자고 하였다. 작대기로 받쳐 두고 나도 쉬었다. 신랑은 그곳에서 담배 한 대 피웠다. 새색시가 길을 재촉하였다. 친정어머니가 빨리 보고 싶은 모양인지 다시 길을 걸었다.
상보 저수지 곁을 지나 인적이라고는 안 보이는 들판 속으로 지난다. 논벌에 백로가 먹이 찾는다. 신부가 재촉한 덕분에 마을입구가 보인다. 언덕 위에 영지초등학교 태극기가 펄럭인다. 나의 이마에도 땀방울이 맺힌다.
집이 가까워졌나 보다. 새색시는 신랑보다 앞서 걸어갔다. 신랑도 짐꾼인 나도 부리나케 달음질쳐 따랐다. 안마을 깊숙이 들어간다. 신부 쪽 동네사람들이 나와서 반긴다. 신랑은 그제야 지게에서 가방을 내린다.
시내에서 택시라도 하이어(hire)하여 오지 않고 왜 걸어 왔을까? 내 손에 빨간 돈 5원을 세어서 쥐어 준다. 빈 지게지고 돌아오니 가볍다.
세상에 태어나 최초 스스로 5원 벌어서 가슴이 막 두근거렸다.
(20211002. 토. 노인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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