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수필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
64. 미나리 꽃
이영백
나는 미나리인생이다. 부평초처럼 뿌리도 없이 아무데나 던져두어도 스스로 뿌리를 생성시켜 척박한 땅에서라도 잘 자라듯 살아왔기 때문이다. 미나리는 어디서나, 습지나 물기 있는 곳에 뿌리째 썰어 던져두어도 그곳이 살 땅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억척의 식물이다. 나도 그 미나리처럼 그렇게 살았다. 그 미나리 식물이 뿌리내려 꽃이 핀다. 그것도 온통 하얀 꽃으로 핀다. 미나리에 “미나리 꽃”이다.
미나리는 초교 들어가기 전에 세 번째 살았던 집 앞에 깊고 물맛 좋은 우물 곁 미나리꽝에 있었다. 우물에는 동네 누구든 나와서 두레박으로 물 퍼 마시기도 하고, 심지어 여름에 더우면 남자들은 옷 입은 채로 물 덮어쓰고 목물하였다. 그렇게 땅속 맑은 물을 퍼 올려 마구 써대니 아버지 생각에 물은 누구라도 퍼 올려 사용하고, 버리고 하니 미나리꽝 만들자고 하였다.
외동에 나갔다가 미나리를 뿌리 채 얻어오셨다. 작두를 내 놓고 뿌리째 듬성듬성 썰었다. 그리고 우물 앞 늪에 물고여 있는 곳에다 미나리꽝을 만들었다. 썰어 둔 미나리를 삼태기에 담아 뿌렸다. 진흙탕에 골고루 뿌린 후 작대기를 짚고 들어가 발로 밟아대었다. 미나리꽝은 동네사람들을 위하여 만들었다. 부지런히 물 사용하고 한 두레박씩 부어댔다. 어떨 때는 일부러 미나리에 물 준다고 물을 길어올려 부어대었다.
미나리는 자리를 잘 잡아서 억센 뿌리박고 새파랗게 잎이 돋아났다. 잎들이 앙증스럽게 손 벌리듯 피어났다. 뿌리에서는 마디마다 새 뿌리가 곁으로 나와 온통 미나리 밭을 만들었다. 그렇게 아침ㆍ저녁나절 들여다보면 미나리 저도 기운 나서 진하게 잎 피우고 줄기가 번성하여졌다. 동네 사람들은 수시로 베어다 반찬 하였다. 물 고인 늪이었는데 미나리 밭이 되었다.
여름 더운 날 “얘들아 미나리 꽃 폈다. 미나리 꽃 봐라!”고 하였다. 모두들 우물 앞 미나리꽝에 모여들었다. 참 신기하였다. 어제도 없던 꽃이 이렇게 밤새 피워내었다. 새하얀 꽃이 줄기에서 불쑥 솟아올라 꽃들 저마다 자랑하듯 하얗게 피었다. 미나리 꽃이 거룩하고 아름답다. 참 희다.
새파란 잎만 보다가 흰색 꽃을 피우니 새삼 미나리 베어 먹기가 아깝다. 언제 부지런히 물을 주면 잘 자라주어 꽃을 더 잘 피운다.
(20210610. 목)
'엽서수필 3 > 미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엽서수필 3) 미늘 66. 대나무꽃 (0) | 2021.06.13 |
---|---|
(엽서수필 3) 미늘 65. 감꽃 (0) | 2021.06.12 |
(엽서수필 3) 미늘 제6부 꽃의 변명 63. 호박꽃 (0) | 2021.06.08 |
(엽서수필 3) 미늘 62. 제4기 RNTC무관후보생 되다 (0) | 2021.06.06 |
(엽서수필 3) 미늘 61. 대학 문 두들기다 (0) | 2021.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