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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3/미늘

(엽서수필 3) 미늘 40. 시래기 밥

 

엽서수필 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40. 시래기 밥

이영백

 

 파란 밥 시래기 밥이다. 예전 시래기는 무를 심어 무청을 끊어 만들었다. 시골에서는 시래기로 밥도 짓고, 겨울에는 된장국, 일상에는 시래기나물무침으로도 먹었다. 농촌에 살았던 유년기 추억은 역시 “시래기 밥”이다.

 어린 날 농촌에서 가을이면 온갖 곡식인 열매를 수확하고 저장하여야 한다. 뿐만 아니고 무, 배추, 감, 고욤 등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특히 무청을 잘라 모아 짚으로 엮어 달아매어 보관하여야 하였다. 시래기 만들기는 힘들었지만 그것도 하나의 추억이 되는 것이다.

 시래기 엮기는 어른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날씨 추워지는데 너무나 많은 시래기를 빨리 엮어야 하기 때문에 아이라도 엮어야 한다. 무청을 쌓아 놓는다. 자리 잡아 볏짚 세 가닥 펼쳐놓고 한 가닥은 손바닥 위에, 무청을 일정량 갖다놓는다. 밑에 있던 두 가닥을 차례로 벌려 올려 엮는다. 다음에도 무청 놓고 그렇게 반복하면 시래기 묶음으로 엮어진다. 적당한 길이에서 그만 엮고 가닥을 새끼 꼬듯 하여 마감한다. 두 묶음을 그늘지는 헛간 시렁에 마주 묶어 건다. 그렇게 시래기는 익어가는 것이다.

 날씨 추운 겨울이 다가오면 서 말 참 솥에다 물 붓고 헛간에 걸어 둔 시래기 풀어 삶기 시작한다. 삶는 냄새가 구수하다. 새파란 시래기 삶아 둔 것이 아름답다. 물에다 우린다. 그렇게 2차 가공으로 식감재료가 된다.

 날씨는 춥고 밥은 해 먹어야 한다. 그래서 시래기로 밥을 짓는다. 삶아 둔 보리쌀과 쌀 씻어 솥에다 붓고 시래기 썰어 함께 밥 짓는다. 새파란 시래기 밥이다. 조선간장에 깻묵 함께 넣어 솥에서 밥을 비빈다. 깻묵냄새가 시래기 밥에 어울려 코를 자극한다. 시래기 밥 비벼 먹는 재미가 쏠쏠하였다. 시래기는 된장국, 나물 무치고, 고등어와 함께 찌지는 것으로도 좋다.

 요즘은 시래기 전용 무가 있다. 선산 앞 산밭에 무는 무인데 키가 크지 않다. 그것을 시래기 전용 무라고 하였다. 과학이 발전하여 이제 과학시대에 아예 시래기 전용 무를 길러 아주 손쉽게 시래기를 만들 수 있다.

 시래기는 무기질이 풍부한 파란 일꾼 밥이다. 그러나 요즘은 시래기가 좋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예전에 가난해서 파란 밥을 먹은 것이 아니라 건강을 위해 좋다니 시래기 밥 해 먹는 것이 좋을 것이다.

(20210429.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