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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늚이의 노래 1

(엽서수필) 51. 엄마와 동디깨비 - 이영백

51. 엄마와 동디깨비

 

 

 이영백

 

 글자 모르는 엄마와 아버지와 살았다. 나는 시골에서 열 번째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 날에 네 번째 집으로 이사하였다. 녹색 들판 속에 동그마니 우리 집만 있는 곳이었다. 네 채 속에 숙형, 계형과 셋째 누나와 함께 그렇게 살았다. 머슴들은 큰머슴, 중머슴, 꼴머슴 등도 함께 살았다. 그렇게 농촌에서 북두칠성을 기준으로 은하수 쏟아지는 밤하늘 바라보며 살았다.

 친구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마당에 커다랗게 정사각형 금 그어 놓고 손 한 뼘 크기로 내 집과 상대편 집을 만들었다. 어디서 병뚜껑 하나 주워 와서 그것이 놀이도구인 것처럼 게임을 시작하였다. 내 집에서 엄지로 검지를 붙들고 선 넘지 않도록 튕기면서 병뚜껑 착지점에 꼬챙이로 선 그으면 내 집이 확보되었다. 반대로 상대편 집에서 똑같이 집 확보하는 방법으로 땅따먹기놀이를 혼자하고 놀았다.

 그래도 심심하면 혼자 노는 방법을 또 생각하였다. 요즘은 흔한 종이도 예전엔 없어서 진흙을 펀펀하게 골라놓고 낫 끝으로 그림 그렸다. 그림은 홍수 나서 국도 다리가 무너지면 크레인이 와서 공사하던 모습이었다.

 겨우 윗동네 동사마을에서 친구 둘 있어 만난다. 풀 베다가 비석치기 하였다. 이기면 풀 한 아름씩 챙겨가는 그런 내기하며 놀았다. 비석치기는 저만치 먼저 선을 긋는다. 그 선위에 내 돌을 세워 놓고 반대편 선에서 뒤로 돌아서 돌 던져 세워 놓은 돌 넘어뜨리면 이기는 게임이었다.

 내가 살았던 동네에는 친구가 없었다. 아침이면 용보에서 흘러내려오는 미지근한 물에 세수하고 하루를 시작하였다. 아무래도 친구가 없어 나 혼자 소 풀 베러 다녔다. 그것도 짬 내어 아버지 울력으로 서당에 다녔다. 서당 공부 15분이면 그날 교육과정이 끝나 혼자 할일이 없었다. 그래도 시간 남으면 앞산 밀개산에 올라가 낙엽 그러모았다. 이를 가마니에 차곡차곡 넣어 지게에 지고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혼자 집에 있으려니 엄마도 미안해하였는지, 나와 동디깨비*하자고 하였다. 소주 병뚜껑 모아 밥그릇하고, 사금파리 주워 와서 살림도구 하며, 납작한 돌 주워 모아 가구처럼 활용하였다. 머시마가 혼자 노는 데 부족하다고 엄마까지 동디깨비 같이하며 놀았다.

 소녀가 없어서 소년으로 그렇게 푸른 하늘 바라보며 들판 속에서 외롭게 살았다. 그렇게 자연 속에서 소년이 청년으로 살았다.

(20200522)

*동디깨비 : “소꿉놀이 경주 사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