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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늚이의 노래 1

(엽서수필) 35. 슬픈 밥그릇

35. 슬픈 밥그릇


이영백


 흔히 사람들이 살아온 연륜을 “밥그릇(rice bowl )”으로 따진다. 살아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밥을 그릇에 담아먹고 살아 왔던가? 밥그릇은 동양인 중에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식기(食器)의 한 종류이다.

 흔히 우스갯소리로 개밥그릇으로 사용하는 청자기를 두고 호리 꾼이 탐을 내었다. 주인장을 구슬려 헐값으로 사려다가 돈만 잃고 말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찌 청자기를 개밥그릇으로 사용하였단 말인가?
 개다리소반에 놓이는 밥그릇은 백자주발로 무겁기도 하였다. 그렇게 툭진 그릇에 밥 담아 먹었던 시절도 있었다. 하물며 엄마가 살던 시절에는 대주나 남정네들에게는 깎듯이 백자주발에 전에서 수북이 올라오는 고봉의 밥을 담아 주었다. 반찬도 정갈하게 낱낱이 갖추 챙겨 간장, 고추장까지 종지기마다에 담겼다. 국그릇은 넓고 컸다.
 그러나 엄마의 밥그릇은 늘 박 바가지 하나였다. 식구마다 밥 먹는 권식(眷食)들의 그릇에 담아 주다 보면 당신이 먹을 밥그릇이 모자랐다. 밥 먹다가도 늘 부르는 대로 즉석에 심부름하여야 하였다. 조금이라도 늦을라치면 괜히 고성이 나오거나 욕까지 먹기 십상이었다. 엄마의 밥그릇은 박 바가지에 몇 가지 준비한 나물이 얹히고, 겨우 강된장 한 숟갈로 간 맞추어 비비다 부르면 또 달려가야 하니 앉아서도 편히 밥 먹을 수 없었다.
 엄마의 밥그릇에 비해서 머슴들의 밥그릇은 백자주발이 더 커보였다. 주객이 전도되었다. 고용된 머슴들은 큰 밥그릇에 많은 양의 밥이 담겼다. 엄마의 밥그릇은 사실 따로 없는 것이다. 박 바가지에 마구잡이로 섞은 밥이 전부였다. 부엌을 들며 한 숟갈 입에 퍼 넣고, 나면서 물바가지 물 마셔야 그나마 소화라도 하게 될 것이다. 밥은 급히 먹으면 체한다. 밥은 천천히 씹어 먹으라고 하면서 오로지 엄마의 밥 먹는 모습에는 마치 전쟁이라도 난 듯 늘 그렇게 바삐 겨우 입에다 넣을 뿐이었다.
 사랑채에서는 과객(過客)들이 평소 서넛 분은 되었다. 이분들도 소반에 정한 밥그릇은 놓이고 국그릇 반찬종지기가 아버지와 똑같이 얹혔다. 그러나 엄마의 밥그릇은 늘 박 바가지 하나가 전부이었다. 그렇게 이백 석지기 안 주인의 밥그릇은 사실상 없었다.
 모내기 하는 날은 들판에서 들밥 먹는다. 이날만큼은 엄마의 밥그릇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날도 지나던 많은 길손들까지 우리 집 밥맛을 보았다. 그날도 역시 엄마의 밥그릇은 없었다. 엄마는 슬픈 밥그릇이었다.
(2020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