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림산문 |
1668.촛불
이영백
cafe.daum.net/purnsup
섣달 그믐날 밤에 어머니는 비싼 초를 사다가 불 밝히는 것을 좋아하셨다.
비싼 초 켤 엄두도 못 내다가 촛불 켠 일은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었다.
어머니는 가장 평범하면서도 양장도 안 해 보신 근대의 어머니셨다.
평생에 남이 다 하는 파머 한번 하지 못하시고 비녀만 하신 분이다.
그래도 일평생 여자의 삶을 원망하지 않으셨다.
섣달 그믐날 밤이면 열 자식 막내인 나에게 농을 걸어 주셨다.
야야! 막내야. 오늘 밤에 잠자면 눈썹 신데 이.
그라~믄 안 자면 되지 예.
그러나 섣달 그믐날 밤은 길다.
호롱불 앞에 꼬박 밤새운다고 호언했다가 그만 졸다가 슬며시 누웠다.
어머니 쌀을 입에 넣어 씹어 두었다.
잠든 막내아들인 나의 눈썹에다 씹어낸 흰 쌀가루를 발라 두었다.
그런 후에 모른 척하고 나를 깨웠다.
안 잔다고 하더니 그 사이에 잠 들었 제?
엑~ 안 잤는데요.
거울 가 봐라, 눈썹 시었으면 잤고, 안 시었으면 안 잤제.
겁이 덜컥 나서 거울 앞에 이르렀으나 차마 나타나기가 무서웠다.
아니 이럴 수가 있나, 정말 눈썹이 하얗게 새었다.
앙~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괜찮아 놀리려고 쌀가루를 바른 거야, 세수나 하렴!
어머니는 평생에 그렇게 아끼던 초를 끄집어내어 그날은 불을 밝혔다.
새벽 네 시 동해남부선 첫 기차 떠나고, 닭이 울고 난 뒤에
새해에는 농사 ․ 가족건강 모두 기원하려고 우물에 촛불*을 드리웠다.
(청림/20100. 20170826.)
*촛불 : 초에 켠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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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泳 伯 (1950∼) 경주産. 대구거주. 호 靑林. 필명 청림숲힐.
●교육자 ●교육행정가 ●보학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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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대학교교육대학원 교육학석사/○차성이씨중앙대종회 사무총장
현) e이야기와 도시 대표/ 현) 영남이공대학교 50년사 편찬위원
●2012년 월간 한비문학 신인문학상 수필부문수상으로 수필가 등단
○한국한비문학회 회원/○수필과지성문학회 부회장
●제6회 한비신인 대상 수상(2012년 12월)
●LH ․ 여성동아 공동 에세이 공모전 동상 수상(2013년 1월)
●매일신문사 제1회 매일시니어문학상 논픽션 우수상 수상(2015년 7월)
●매일신문사 제2회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 특선 수상(2016년 7월)
●제10회 한비 작가상 수상(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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