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수필 |
33. 첫 PX가기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PX는 군인 및 기타 허가된 인원에게 물품을 판매하는 군대 내에 있는 매점이다. 주보酒保라고도 했지만, 이 용어는 과거 일본 군대에서 사용하던 명칭이었다. 육군에서는 1954년 3월 1일을 기해 이러한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대신 “매점”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지금은 매점 또는 PX로 불리고 있으며, 이곳에서 파는 물품은 면세免稅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기 때문에 매우 저렴하였다.
부대 내에 설치되어 있던 PX는 1971년 8월 4일에 우리가 입소하고 출입금지 명령이 내려졌던 곳이다. 입영훈련기간에 RNTC하사관후보생에게는 별도의 사용허가가 있기 전까지는 출입이 통제되었던 곳으로 더욱 궁금해 하였다.
고된 훈련을 마치고 나면 기간병들이 곧잘 들락거리던 곳이 PX이다. 그러나 엄명이 내려진 그곳은 훈련병들에게는 금단지역이었다. 사회생활에서 마음대로 물품을 사던 것을 일체 못하고 있으니 일부 훈병들은 좀이 쑤셨다. 제일 사고 싶은 것이 아마도 애연가에겐 담배일 것이고, 금연하는 사람에게는 시원한 환타나 맥주 한 병 사먹는 일일 것이다.
애연가들은 하루에 한 갑 배급 주는 담배(=화랑)로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었기에 담배를 사기 위해 더욱 애쓸 것이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아니 하였기에 처음에는 담배를 한 갑씩 받아서 더블 백에 모아 두었다. 아니 누가 일러 주었는지 골초 꾼이 알고 찾아와서 ‘담배를 팔아라.’고 하였다. 국가에서 받은 것을 어찌 돈을 받고 팔 것인가? 나는 이제껏 모아오던 담배를 그냥 내어 주고 말았다. 담배를 받은 그는 상당히 고마워하면서 PX사용이 허가되면 과자를 사주겠다고 하고 모아 둔 담배를 고맙게 받아 갔다.
본래 인간은 하지 말라면 더욱 하고 싶은 것이 인간이다. 마치 금단의 열매를 따 먹고 인간이 원죄를 범하듯이, 보지 말라는 데 더욱 보고 싶고, 하지 말라는 데에 더욱 관심을 가지며, 먹지 말라고 하면 더욱 먹고 싶어지는 게 인간이다. 그 금지구역이 언제 풀릴 것인가? 우리 훈병들 대다수는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차라리 미리 풀면 어떻게 될까? 분명히 RNTC하사관후보생들이 배가 고프거나 통제를 잃어버리고 분별없이 PX에서 막 사대기를 하지 않을까 우려도 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랬다. 그어진 날짜까지는 PX사용이 절대로 풀리지 아니하였다. 어떻게 보면 그런 원칙이 있어야 하는 것이 맞기도 하였다. 정해진 것은 정해진 대로 통제를 하여야 그것도 훈련에 속하지 않을까 생각도 된다.
드디어 PX사용이 허가되었다. 훈련도 막바지에 왔고, 더 이상 배고프지도 않았다. 단지 애연가들만 PX를 사용하기에 바빴다.
화랑 담배를 받아갔던 훈련생이 그동안에 고마웠다고 제일 먼저 나에게 종합선물세트인 드롭스를 한 상자 사다 주었다. 드롭스는 불투명하고 달기만한 슈거캔디를 발판삼아 나온 것이다. 신맛과 화려한 빛깔 등이 들어 있는 사탕으로 인도에서 보석과 향신료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드롭스와 결합해 갖가지 투명한 빛깔로 탄생하였다. 물론 이 드롭스는 나중에 퇴소하고 훈련선물로 아버지께 고스란히 한 상자 갖다 드렸다.
심지어 우리 훈병들이 PX사용에 허가가 되면서 다음으로 많이 사는 것이 맥주麥酒이었다. 얼음에 채워진 맥주이었다. 날씨가 더웠기에 시원함을 느끼기 위해 시원한 맥주를 사 먹는 것이 취향이기도 하였다. 사실 훈련병으로서 알코올을 섭취 한다는 것은 허용에서 문제점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생각보다 PX를 사용할 시간이 그리 길지 아니하여서 다행이었다. 모두가 걱정하던 PX사용에 비교적 조용하게 이용하기가 잘 적용되었다. 정말 필요한 만큼만 이용하고 절제하려는 모습이 훈련병으로서 대단히 가치 있는 행동으로 이어져서 그나마 보기 좋았다. 스스로 지식인으로 자인하여 품격品格도 지켜졌다. 사전에 한 걱정이 모두 사라지고 조용하게 PX사용이 잘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푸른 숲/20100-2013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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