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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이군훈의 단풍하사

[스크랩] (푸른 숲 제8수필집)이군훈의 단풍하사-13.RNTC훈병과 목욕

신작수필

13. RNTC훈병과 목욕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사람이 살아가는데 물을 만나고, 목욕을 하고 산다. 물론 군대 훈련을 받아도 분명 사람 사는 일인지라 목욕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목욕은 특히 여름이면 목욕하는 것이 간절한 것이다. 남자들만 모인 군대에서는 더욱 목욕이 필요하다. 매일, 매일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훈련장에서 어찌 쉰내가 푹푹 나는 것을 그냥 두고만 볼 것인가? 단체목욕이라도 분명 해야 할 것이다.

 그날도 훈련을 마친 상황에서 시원한 물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훈련을 마치고 숨만 할딱할딱 쉬고 있는데 구대 일직병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팬티만 착용하고, 수건과 비누를 지참하고 맨발로 중대 사전에 10초 이내 집합하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제 군인정신이 제법 든 RNTC훈병으로 명령이 잘 전달되어가고 있었다.

 10초 만에 팬티 걸치고, 수건과 비누를 지참하고 맨발로 전광석화와 같이 거짓말 좀 보태어서 정말 시간 내에 집합하였다. 구대장님이 빙그레 웃어 주었다. 우리도 사람인지라 그런 명령을 이제는 수행할 수가 있게 되었다.

 중대 사전에 집합하여 구대장이 나오자말자 오와 열의 맞춤은 기본이고, 자연히 보고가 들어가서 100% 출석으로 목욕준비가 완료 되었다.

“목욕장으로 출발!”

이라는 말과 동시에 우리들은 대한민국 육군 보병으로 군가를 불러야 했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지만∼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전투와 전투 속에 맺어진 전우야!∼

산봉우리에 해 뜨고, 해가 질 적에

부모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

 많은 훈련을 거쳐 정예화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누가 무어라 해도 대한민국 육군은 보병이었다. 팬티만 입고, 수건을 목에 걸고 비누 들고 맨발로 군가를 부르다니 투철한 군인정신이 아니고서는 맨 정신으로는 이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320여 명이 동시에 남자들만 이렇게 줄을 맞춰 군가를 불러대며 가는 것도 쉽게 볼 장면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염천炎天에 바라던 목욕을 하러 목욕장으로 줄 맞추어 가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이겠는가? 이러한 일들이 자유로 이루어지면 좋겠는데 군대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320여 명이 동시에 목욕을 준비하였는데 개인행동은 할 수가 없다. 단체로 구령에 맞춰 160여 명씩 4열로 준비하여 행동을 같이하여야 한다.

“1그룹 목욕 준비! 샤워기 앞에 착지!”

라는 구령에 맞춰 40명이 샤워기 앞에 서서 동시에 4분간씩 샤워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야 320여 명이 30여 분만에 목욕이 완료될 수 있기 때문이다. 1그룹은 그것도 모르고, 신참인 우리들은 물을 보고 좋은 물 만난 것으로 착각하고 너무나 좋아했다.

“샤워기 앞에 정열!”

“탈의 실시!”

에 맞춰 탈의하고, 홀라당 옷을 벗어 뒤에 두고 샤워기 앞에 비누를 지참하고 들어섰다.

“샤워 실시!”

 구령에 맞춰 들어서자말자 샤워기에서는 물이, 시원한 물이 뿜어져 나왔다. 이 찌는 염천에 그 시원함을 누구에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쏟아지는 샤워기에 우리는 물이 계속 나올 줄 알고 비누를 들고 전신에 칠하고 머리카락에 거품이 만발하도록 만들어 댔다. 그 시간이 정확히 4분인데 약삭빠른 RNTC훈병들은 머리를 빨리 감고, 나오는 물에 온 몸을 헹구며 여유를 부렸다.

 그러나 굼뜬 사람은 제법 천천히 물을 그냥 계속 사용할 수 있는 줄 알고 머리카락에다가 비누거품을 잔뜩 만들어서 눈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하고 있었다.

“1그룹 목욕 그만!”

 갑자기 샤워기에서 물이 뚝 끊어지고, 목욕이 끝나고 말았다. 샤워기에서 물이 정지되고 나오던 물이 갑자기 말라 버리니 머리에 덮어쓴 비누거품은 누가 없애 주려나? 눈에 비눗물이 들어가니 따갑고 앞도 잘 안 보인다. 그런대도 빨리 나와야 다음 그룹이 들어가는 데 그대로 비누거품을 머리에 뒤집어쓰고서 팬티를 찾아 입고 돌아 나왔다. 세상천지에 이런 목욕이 어디 여기 말고 또 있단 말인가?

 그러면 그렇지. 군대 목욕이 그렇지. 언제 정말로 떼를 불려 목욕할 시간을 어찌 줄 것인가? 320여 명 전체를 30여 분만에 목욕 시키려면 조교들도 이런 방법밖에 없을 것이다. 신참 훈병들은 이것을 어찌 알았겠는가?

 대략난감이다. 머리카락에 거품도 덜 걷어 내고, 비누 흰 거품을 뒤집어 쓴 채로 팬티를 찾아 입고, 수건 걸치고 내무반으로 돌아 올 수밖에 없는, 세상에 희한한 목욕을 체험하고 말았다. 󰃁

(푸른 숲/20100-20130607.)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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