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수필 |
12. RNTC훈병의 편지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속설에 까치가 울면 좋은 소식이 온다고 했던가? 멀리 충청북도 “증평曾坪”에까지 와서 군대 훈련을 받고 있는 데도 일자 소식이라도 없다. 옛날에는 비둘기가 소식을 전하는 것을 “전서구傳書鳩”라고 있었다. 이곳은 세상 돌아가는 신문도 없다. 휴대폰도 없던 시대이었으니 그저 일반 사회와 동떨어진 공간에서 열심히 훈련만 받으면 되는 것이다. 군사과목 중에 “입영훈련Ⅰ”을 이수하게 되는 것뿐이다.
군대 훈련을 받고 있는 우리로서는 그냥 감감 무소식이 희소식인 것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입소하고 이튿날 밤에 행정본부 요원 기간병이 한 아름의 편지를 들고 들어온다. 아니 누가 벌써 이렇게 많은 편지를 보냈단 말인가?
우리 1년차 8구대 중에 제5구대에만 편지가 저렇게 많이 왔단 말인가? 요즘 같으면 바로 스마트 폰으로 주고, 받고 할 뿐인데, 당시로서는 소통이 전부 편지밖엔 없었다.
“김 돌이!”
“예.”
“이 박성!”
“예.”
“박 길이!”
“예.”
“최 선돌!”
“예.”
“정 욱이!”
“예.”
모두가 그 편지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청주교대 1학년들이었는데 하물며 보낸 사람들도 모두가 청주교대 여학생들이 자기 고장에 군대 훈련 들어간 친구에게 편지가 쏟아지게 보낸 것이었다. 제208학군단 대구교대생들은 어느 누구 하나도 편지 한 통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아무도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이곳의 주소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40명 우리 제5구대 중에 20명이 청주교대생이었다.
대구교대생 제208학군단 훈병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20여 통의 첫날 온 편지는 모두가 청주교대생 여학생들이 보낸 편지이었다. 이것도 타향에 대한 서러움인가? 정말 타향에 대한 서러움이었다.
어찌 이런 사연을 알았는지 우리 제5구대장님, 정말 대단하신 분이었다. 청주교대생들이 텃새로 편지를 보내 대니 대구교대 제208학군단 후보생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저녁 내무반에 들러서 강제로 고향 편지쓰기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막내아들 군대훈련 보낸 부모님께
일기 고르지 못 하는 삼복더위에 상금도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곳 충청북도 증평훈련소에 입소하여 군 사령부에서 훌륭하신 사단장님을 모시고, 연일 지속되는 군 훈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불철주야不撤晝夜 돌봐 주시는 친절하신 구대장區隊長님의 보살핌에 건강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오로지 입소 전에 아버님의 천식喘息으로 하루하루가 걱정이 되옵니다. 아울러 밀개산 콩밭에 가뭄이 들어 콩잎이 마르던 것을 보고 왔는데 간혹 한 번씩 도랑에 물꼬를 틀어 물대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철둑 밑 밭에는 콩잎이 좋던데 시기를 놓치지 마시고, 콩잎을 따 두어야 제 때 먹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묘답 다섯 마지기 물대는 통로가 내려앉았던데 아버지께 손질을 봐 주셔야 할 것입니다.
여기 멀리 충북 증평에서 고향 논과 밭에 정신을 쓸 수가 없음을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훈련 마치고 집에 가면 새보 밭에 물외 따다가 오이냉채 국 만들어 먹었으면 이 더위를 물리칠 수 있을 것인데 그것이 삼삼할 뿐입니다.
오늘도 무더운 날에 훈련은 열심히 받고 탈 없이 지내오니 아무 걱정 마시고 제가 도착할 때까지 평안히 계십시오. 또 글월 올리겠습니다. 이만 총총.
1971년 8월 6일(금)
열 번째 막내아들 영× 올림
이러한 내용의 편지라도 육필로 잘 적어서 봉투에 넣되 봉투 아가리에 풀을 붙이지 아니하고, 그저 앞 주소 난에 우표만 붙이고 행정본부에 제출하였다. 바로 군사우편 보안검사保安檢査가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무슨 간첩접선이라도 할 것인가 말이다. 그것도 장차 대한민국 2세 교육을 책임질 초등학교 교사가 될 사람인데 말이다.
(푸른 숲/20100-20130606. 제58주년 현충일에)
'(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 > 청림수필집·이군훈의 단풍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푸른 숲 제8수필집)이군훈의 단풍하사-14.RNTC훈병과 빨래 (0) | 2013.06.08 |
---|---|
[스크랩] (푸른 숲 제8수필집)이군훈의 단풍하사-13.RNTC훈병과 목욕 (0) | 2013.06.07 |
[스크랩] (푸른 숲 제8수필집)이군훈의 단풍하사-11.RNTC훈병의 수양록 (0) | 2013.06.05 |
[스크랩] (푸른 숲 제8수필집)이군훈의 단풍하사-10.RNTC훈병과 식사 (0) | 2013.06.04 |
[스크랩] (푸른 숲 제8수필집)이군훈의 단풍하사-09.고향 까마귀 (0) | 2013.06.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