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수필 |
32. 참새 잡기
이영백
cheonglim03@hanmail.net
내가 어렸을 적 우리 집에는 형제도 많았고, 사촌 누이들도 많아서 시골이면서 항상 취객(娶客)들이 북적거렸다. 우리 집에만 네 명이었고, 큰 집, 작은 집 각각 네 명으로 모두 열두 명이었다. 물론 모든 취객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모이다 보면 큰 집에서 한 명, 우리 집에 두 명, 작은 집에서 한 명 정도로 우리 집에 다 모이게 된다. 그러면 우리 집에는 백형(伯兄), 중형(仲兄), 숙형(叔兄) 등 세 분이 취객들의 놀이에 동참하기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매일 취객과 본손(本孫) 등으로 7∼8명이 모이기 일쑤이었다.
오늘도 큰 집 매형(妹兄)과 우리 집 매형 두 분과 작은 집 매형 한 분으로 벌써 오후 서너 시가 되면서 화투놀이가 시작되었고, 또 부지런한 취객은 닭 잡아서 닭 간으로 술안주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낮에 조양 못으로 들어가는 도랑에 온갖 잡어를 잡아서 술안주를 끓이고 있는 중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겨울이 시작되면서 집에 할 일도 없으면서 처가로 처가집안으로 모여들어 이렇게 천렵(川獵)도 하고, 닭도 잡아먹고 윷놀이와 화투를 치고 논다. 자연히 막걸리를 사다 놓고 권하고 먹는 것을 자주 한다. 부엌에서는 방금 참기름 짜고 그 기름으로 고소한 냄새를 온 집안에 흩뿌린다. 밥을 하고 밥 위에 장떡을 만들어 얹고, 참깨 짠 깻묵으로 시래기비빔밥을 만든다. 사람들이 모이면 저절로 먹는 것부터 챙기는 것이 가장 큰 일이기도 하다.
오늘 머슴들은 하루 종일 이엉 엮기를 하였다. 마당 전체에 짚으로 가득하고 한 사람씩 자리를 잡고 앉아 이엉을 엮는다. 이엉은 세 갈래 원리에 따라 대고, 붙이고, 꼬고, 엮어서 짚의 밑동을 기준으로 엮이며 볏짚 윗부분이 끝으로 가는 우리 조상이 발명한 지붕이기 최고로 훌륭한 재료이다. 약 10m정도로 엮고서는 이제 끝에서 돌돌 말면 한편으로 굵어지고 다른 편은 약해서 끝을 묶어서 한 곳에 쌓아 둔다. 지붕 이는 날 갖다 쓰기 좋게 쌓아 둔다. 이엉은 누구나 쉽게 배워서 이엉을 엮을 수가 있다. 그러나 지붕이기에 마무리를 하여야 하는 것은 바로 용마름이 있다. 이것은 아무나 만들 수가 없다. 만들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용마름은 이엉을 이고 제일 끝에 마지막으로 덮어서 비가 오면 양편으로 흘러내리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저녁이 시작되기 전에 윷놀이가 한창이다. 그것도 멍석을 펴 놓고 윷을 줄 넘어 던져야 되는 놀이다. 한창 놀이가 무르익을 때 바로 저녁이 나온다. 모두 시래기비빔밥이다. 방금 짠 참기름의 깻묵이 섞이어 뜨끈뜨끈한 시래기비빔밥은 이런 시골이 아니고서는 그 맛을 볼 수가 없을 것이다. 덩달아 나온 것은 구수한 숭늉이었다. 마당에 멍석 깔고 온통 모든 식구들과 취객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식사를 하니 더욱 맛이 난다. 이런 삶이 사람 사는 보람이고, 시골에서 겨울이 들면서 농사 지어 놓고 이렇게 모여서 노는 것이다.
어둡고 추어져서 방으로 들어가고 이경(二更)이 왔다. 마침 바람이 세어지고 눈이 오기 시작한다. 숙형께서 오늘 밤참은 “참새 죽”이라고 하였다. 겨울 밤 자다가 깨서 참새 죽을 먹으면 그렇게 고소한 죽은 처음 먹을 것이다. 바로 오늘 바람 불고 눈이 내리면 참새들이 지붕 처마 밑에 들어와 몸을 피할 때 잡기가 쉽다.
참새잡기 도구는 별 다른 것이 없다. 바로 손이 있으면 되고, 가장 큰 도구라야 플래시 하나면 된다. 그리고 참새를 붙잡아서 묶는 새끼줄 1m면 된다. 이것이 참새 잡는 장비다. 참 간단하다. 나는 어려도 참새 잡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한 팀으로 매형 뒤를 따랐다.
우리 집은 여러 동(棟)이 있어서 겨울에 참새 잡기가 아주 쉽다. 조용하게 그저 뒤따라 다녔다. 드디어 지붕 밑에 손을 집어넣어 참새 한 마리를 잡아냈다. 이 때 플래시 켜기는 기본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플래시 불이 매우 밝게 느껴져서 참새가 도망을 가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참새를 한 마리 잡고, 또 한 마리 잡고 계속 새끼줄을 비틀어 사이에 참새목을 끼운다. 참새는 자다가 꼼짝 못하고 그저 새끼줄에 끼게 마련이었다. 자꾸 잡힌 참새 수가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취객들이 여러 팀을 만들어 참새 잡기는 겨울이 최고이었다. 팀마다 참새를 잡아와서 보니 약 쉰 마리나 잡아왔다. 그래서 그 날은 참새 죽을 끓여 먹었다. 그 고소한 참새 죽은 둘이 먹다가 셋이 죽어도 모를 맛이다.
가을에 농사 지어 놓으면 참새들이 벼가 익기도 전에 새 하얗게 씹어 놓은 것을 보면 참새 잡기가 결코 미안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잠을 자다가 붙잡힌 참새들은 아주 재수가 옴 붙은 날이었다.
( 푸른 숲/20100-2012.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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