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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내 고향이 그리운 것은

[스크랩] 푸른 숲/20100 수필1집 "내 고향이 그리운 것은"-(28)멍석

신작수필

28. 멍석

이영백

cheonglim03@hanmail.net

 

 요즘 시골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천막을 펴서, 바닥을 훔치고 그 많은 사람들이 앉을 수가 있어서 참 편리하다.

 그러나 조금 전 시대만 하여도 시골에서는 잔치나 많은 사람이 모이면 앉을 자리를 바로 멍석을 가져 나온다. 짚으로 한 올 한 올 엮어서 짠 멍석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돌돌 말아서 처마 안에 차례로 쌓아 두었다가 이렇게 펴서 활용한다.

 멍석을 주로 사용한 것은 농사를 지어서 탈곡한 후에 저장하였다가 벼 말리기 할 때이다. 멍석을 펴서 가마니의 벼를 부어 고무래를 사용하여 늘기 시작한다. 이런 멍석이 많다는 것이 곧 경제의 척도가 된다. 우리 집에는 멍석이 열개 정도나 되었다. 이 멍석도 시대를 오래 사용하면 모퉁이가 닳아 버려서 자꾸 줄어지다가 기어이 폐 멍석을 하게 된다. 그런데 웬만해서 폐 멍석을 하지 않는다. 멍석 만들기가 참 힘이 들고 대단한 재주가 없이는 멍석 만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멍석도 없는 집에서는 멍석까지 빌리러 오는 경우도 흔히 있었다.

 흔히 멍석말이라는 것이 있다. 멍석말이란 예전에, 권세가에서 사람을 멍석에 말아 놓고 뭇매를 치던 형벌이다. 동네에서 협조를 잘 하지 않거나 못된 짓을 했을 때 벌주는 방법이었다. 물론 이 벌주기가 관에서 공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잘못 권세가들의 전용이 되어서 사라지긴 하였다.

 우리 집에는 멍석을 자주 사용하였다. 밥을 먹는 권식이 이십 여명이 넘으면 아예 마당에 멍석을 펴서 비로 쓸고 난후 밥상이 멍석으로 배달이 된다. 아주 잔치 마냥 개별상이 차려지고 큰 채 처마에 남폿불이 켜지면 마당 안에 전체가 환한 곳에서 저녁을 먹게 된다. 이 때 마당 둘레에는 서너 마리 우리 집 강아지가 식사하는 주인을 지키고, 일찍 홰를 타고 닭 통에 들어간 닭들은 저들에게는 밥을 주지 않는다고 구구거린다. 그러면 외양간에 들어가지 못한 얼룩소는 기분 좋게 한 번 황소울음을 울어 준다. 일찍 소쩍새가 저녁에 맞춰 소쩌∼억, 소쩌∼억 울어서 귀촉도를 밝힌다.

 일찍 저녁을 먹고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제마다 멍석에 들어 누워 하루의 피로를 쉬는데, 머슴들은 오늘 못다 한 여물 썰기에 바쁘고, 누이들은 형수와 함께 여름 빨래를 다린다. 손잡이 달린 다리미에 벌건 숯불이 이글거린다. 그러나 조금 지나면 불꽃이 사라지고 입으로 불다가 다시 부채를 들고 부친다. 불이 다시 살아 뜨거워지면 다림질이 자꾸 바빠진다.

 어린 우리들은 여름방학 숙제에 별자리 관찰로 들어간다. 저녁 일찍 뜬 금성(金星)은 개밥별로 개밥 줄 때 나온다고 “개밥별”이라고도 하고, 반짝반짝 빛이 새로 난다고“샛별”이라고도 한다. 저녁 끝난 시간 북극성이 선명하다. 은하수가 청명하여 견우·직녀가 서로 슬픔에 깜빡거린다. 여름 별자리를 찾아 그림을 그리고 별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데 멍석에서는 하늘의 유성(流星)인 별똥별이 어디로 간 것인가 이야기가 많아진다.

 그 사이에 어머니께서는 노란 옥수수가 삶아 져 멍석에 놓인다. 햇고구마는 금방 밥 먹었는데도 한 개를 더 먹겠다고 손이 자주 간다. 수정과가 나오면 어린 우리들은 자러 가라는 신호인데도 그저 어른들과 함께 어울리려고 눈이 감기는데도 오랜 시간을 멍석에서 논다.

 멍석이 돌돌 말려 어느 샌가 처마 밑으로 쌓아지면 오늘 일과가 끝이 난다. 모든 식구들이 내일을 준비하러 잠자러 가면 돌돌 말린 멍석들이 회의를 한다. 내일 저녁에 다시 펴지면 만나자고 말이다.

 당시 시골에서는 멍석도 큰일을 해 내는 중요한 장비임에 틀림없다. 금년에도 재주 좋은 숙형(叔兄)께서 멍석을 새로 만든다고 짚을 추리는 일을 다시 시작하려나? 우리 집에서는 아버지와 숙형만 멍석을 만들 줄 안다. 이것도 당시에는 큰 재주에 속한다. 먼저 세끼를 꼬아 멍석 틀을 만들고 추려진 짚을 한 올 한 올 꼬아서 멍석을 만들 준비를 하면 어느 샌가 마당에 흰 눈이 나릴 때 멍석 만드는 계절이 돌아오면 힘은 들지만 멍석을 마무리 지어서 돌돌 말아 보관한다.

 새로 만든 멍석은 사용도 서로 하려고 하고, 자연히 오랜 된 멍석은 그 사용 빈도가 줄어든다. 언제 폐 멍석이 될지 모른다. 우리 인간도 저네들과 같이 젊은이를 좋아하고 나이 들고 병들면 모두가 싫어할 것이다. 멍석도 사람과 똑 같아서 새것만 좋아한다. 아니 오랜 멍석은 바닥이 닳아서 앉을 때 깔끄럽지 않아서 좋은데 말이다.

( 푸른 숲/20100-2012.10.29.)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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