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수필 |
25. 만병통치약(萬病通治藥)
이영백
cheonglim03@hanmail.net
봄이 온다. 봄이 오면 나이어린 나라도 분주해 진다. 아버지의 엄한 명령이 내려오기 때문이다. 봄이면 양지바른 곳에서 햇볕을 쬐는 것이 아니다. 들판으로 골목으로 소쿠리를 들고 봄나물 아닌 봄풀을 캐오라는 것이었다. 베는 것도 아니고 꼭 뿌리째 캐 와야 했다. 골목 안에서는 흙이 단단하여서 뿌리째 캐기가 어렵다. 그래서 지난겨울, 아무 것도 심어져 있지 않은 밭에서 봄에 새로이 돋아나 있는 풀이란 풀을 모두 뿌리째 캐는 것이다.
하루 종일 밭마다 돌아다니면서 봄풀을 뿌리째 캐 모으는 것이었다. 수북이 캐 모아놓아도 집에 나이 이제 8살, 어린 나에게는 아주 많다 싶은데 우리 아버지는 적다고 아직 안된다고 한다. 한 마당 가득 캐 오라는 것이었다. 어린 나로서는 아직 봄이라 하지만 간혹 찬바람이 불어오는 밭에 나가 혼자 낑낑거리면서 봄풀을 자꾸만 캐야 하다니 한편으로는 서글프고 괴로운 일들이었다.
이제 싹이 새로 나서 파릇파릇하게 돋아나는 봄풀을 그것도 뿌리째 캐야하는 나의 심정은 그 누가 알아주랴. 내내 봄풀을 캐면서 미안해하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엄명을 거스를 수도 없고 그저 봄풀을 뿌리째 자꾸만 캐서 집으로 가져 오고 만다.
계속 연 사흘째 봄풀만 캐 모았다. 마당 한 구석이 온통 봄풀이다. 그제서야 우리 아버지는 ‘그만 됐다. 많이도 캐 왔네. 이제 됐다. 막내야! 고생 많이 했다.’하신다. 어쩜 어린 나로서는 무척 궁금하였다. 사흘간 나를 괴롭힌 것은 봄풀이 아니라 봄풀을 캐야하는 마음의 아픔이었다.
먼저 봄풀을 하나하나 아버지께서 확인하여 독풀을 가렸다. 당시 나로서는 독풀이 무엇인지도 모를 때이다. 그저 봄풀만 캔 것뿐이다. 수북이 쌓인 봄풀을 가지고 무엇을 하려나 궁금하던 차에 2차 작업명령이 또 떨어졌다. 바로 이 캐온 봄풀 모두를 도랑가로 가져가서 흙을 씻어 오라는 것이었다. 이제는 바지게에다 봄풀을 담아서 도랑가로 이동하였다.
도랑가에 부어 놓은 봄풀을 물에다 넣기 전에 도랑물을 거스르도록 걸쳐 두고 봄풀을 씻기 시작하였다. 참 이상도 하였다. 벌써 사흘 째 뿌리를 캐어서 시들어 있었는데 물에 들어가니까 언제 그랬느냐 듯이 파릇파릇하게 생기가 도는 것이 아닌가? 이 모두를 서 말 큰 솥에다 부어 넣었다. 꾹꾹 눌러서 솥에다 넣고서 물을 적당히 붓고 솥뚜껑을 눌러 닫았다. 그리고 3일간 밤낮으로 불을 때기 시작하였다. 봄풀에 독풀을 가려내고 끓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처음에는 향긋한 풀내음이 나다가 이제 마지막 사흘째 끓이니까 처음의 냄새는 간곳이 없고 그저 새카만 조청이 되고 말았다. 조청이 된 그 봄풀들의 엑기스를 양푼에 퍼 담아 식힌 후에 여럿이 둘러 앉아 밀가루를 갖다 두고 돌돌 굴려서 환(丸)을 만든다. 똑 작은 콩알만큼 환약(丸藥)을 만든다. 그리고 시렁 위에 보관해 두었다.
나의 궁금증은 더 했다. 그렇게 힘들게 봄풀을 캐어서 끓이고 양푼에 퍼 담아서 밀가루와 합하니 작은 환약이 되고 말았다. 이것을 어디다 사용할까 매우 궁금하였다.
“아버지 이 환약 어디에다가 씁니까?”
“그래. 그것이 궁금하냐? 안 가르쳐 주지!”
“아이고 내가 캐온 봄풀인데 좀 가르쳐 주이소?”
아니나 다를까 환약을 다 비비기도 전에 벌써 그 사용처가 생기고 말았다. 바로 세든 아저씨가 속이 매우 거북하고 다른 신약을 먹어 보았는데 속만 더 아프다고 하였다. 그래서 우리 집에 만병통치약이 있다는 것을 알고 부인이 찾아왔다.
“이약은 보신약(補身藥)도 아니며, 신령한 영묘약(靈妙藥)도 아닙니다. 그저 집에 가지고 가서 어른은 한 번에 7알씩 먹고 물마시고, 어린이는 5알만 먹어도 저절로 속이 안 아플 것입니다.”
라고 하셨다.
정말 신기하였다. 신약을 아무리 먹어도 낫지를 않았는데 무료로 나누어 주신 이 만병통치약은 먹고 바로 소화로 이어져 그만 ‘그러∼륵…….’트림을 하고 말았다. 그러자 그렇게 아프던 속이 가라 앉아 버렸다고 한다.
“아이고! 우리 남편이 벌써 다 나았다고 하네요. 고맙십니데. 약값은…….”
“약값은 무슨……. 됐습니다. 나았다니까 다행입니다.”
그리고 그 부인을 돌려보냈다. 누구든지 속이 더부룩하고 거북하면 이 7알의 만병통치약은 아주 편리하였다. 사실 아버지께 여쭤보아도 우리 아버지가 무슨 약사(藥師)도 아니고 의사(醫師)는 더욱 더 아니다. 과학적인 이유나 근거를 아실 리도 없다.
“아버지 그것이 진짜 만병통치약입니까?”
“아이고! 니가 봄풀 뜯어 온 것이지. 약은 무슨……. 그저 먹고 나았으니 되었지.”
사실상 봄풀은 좋은 약효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슨 분석으로 그렇게 나온 것은 아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저 배가 아픈데 봄풀 기운이 들어가니까 50%는 소화를 도왔고, 나머지 50%는 약을 먹었다는 심리적 효과가 아닌가 생각이 된다.
그러나 저러나 아버지 만병통치약은 우리 마을에 특히 여름에 많이 먹었거나 무엇을 잘못 먹고 속이 아플 때는 특효약이므로 그 이름이 만병통치약이 되어 버렸다.
( 푸른 숲/20100-2012.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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