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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내 고향이 그리운 것은

[스크랩] 푸른 숲/20100 수필1집 "내 고향이 그리운 것은"-(24) 담뱃대

신작수필

24. 담뱃대

이영백

cheonglim03@hanmail.net

 

 아버지는 담배를 줄곧 피우신다. 과거에는 담배를 피우려면 담뱃대가 있어야 한다. 아울러 담배지갑이라고 해서 지갑의 배가 불룩한 것은 그 속에 마른 담배 잎을 부셔서 넣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지어 성냥이 생활화 되지 않았을 때는 부싯돌하며 보드라운 쑥 말린 것을 비벼서 솜처럼 된 것을 함께 가지고 다니셨다. 불룩한 담배지갑과 곰방대는 딱 어울리는 것이다. 담배지갑에 곰방대를 함께 싸서 허리춤에 쿡 찔러 넣고는 일하러 나가신다.

 나는 어려서 작은 아버지와도 함께 일을 많이 다녔다. 우리 작은 아버지도 담배는 즐기셨다. 그래서 허리 고의춤에 담배 지갑과 곰방대는 항상 같이 따라 다녔다.

“작은 아버지! 담배가 그렇게 맛있어요?”

“아니, 심심해서 피우니까 심심초이지.”

“심심해서 심심초! 맞습니다. 맞고요.”

 우리 집에는 웬만한 집보다 담뱃대가 많이 있었다. 사랑채에는 아버지가 전용으로 피우시는 담뱃대만 해도 여러 개가 있었다. 제일 휴대하기 편한 곰방대가 있고, 집에서 일반 손님이 오셨을 때 피우시는 (길이가 반팔정도로 적당한 길이인)일반 담뱃대, 일하시고 집에 들어 오셔서 낮잠을 주무시기 위해 편히 쉬시면서 피우는 장죽(長竹) 담뱃대 등이 있고, 또 여분으로 일반 담뱃대는 적어도 서너 개는 준비되어 있다. 왜냐하면 담배를 담뱃대에 재어 피우시면 진이 나오는데 이로 인하여 막혀 버리면 이내 다른 일반 담뱃대를 찾으시기 때문이다.

 담배를 많이 피우시면 자연히 담뱃대가 진에 막히는 데 이때 아버지는 나를 부른다. 댕댕이 줄을 거둬 놓은 것을 줄기에 잎줄기를 훑어 버리고 대꼬바리에 쑤셔 넣어서 끝까지 쑤셔 넣어서 담뱃대의 물주리에 나오면 댕댕이 줄을 조심스럽게 잡고서 대꼬바리를 잘 잡고 댕댕이 줄을 당겼다 밀었다 반복하여 담뱃대 속의 진을 모두 바깥으로 쫓아낸다. 이 댕댕이 줄은 잎이 난 자리에 잎은 떨어지고 까칠한 흔적만 남아서 진을 훑어 내는 데는 적격이다. 그리고 섬돌에 다가 탁탁 치면 진이 모두 빠져 나온다.

 집에서 한가하시면 장죽을 내어 피우신다. 장죽은 그 길이가 장대하다. 사랑채 방에 누우시면 장죽 대꼬바리는 방에서 사선(斜線)으로 이쪽에서 저쪽으로 만치 길어서 평소 담뱃대는 방에다 두지도 못한다. 그러면 이 장죽은 왜 피우느냐하면 재미가 있어서이다. 담뱃대가 하도 길어서 본인이 담뱃대에 불을 붙이지 못한다. 그러니까 누구든지 다른 사람이 담뱃불을 붙이면 저만치 멀리 누워서 볼에 바람을 모두 빨아 들여 볼이 쪽딱하게 되도록 빨아대야 한다. 담뱃대에 불을 붙이면 불붙이기 위해 그렇게 쭉쭉 빨아 대기는 처음이었다. 지나고 보니 이것이 담뱃대의 진을 직접 입속으로 가져 오지 않으므로 이렇게 피우신 모양이었다. 이것이 상당히 과학적이기도 하다. 곰방대는 사용하기도 휴대하기도 모두 편하다.

 담배를 아버지께서만 꼭 피우신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도 담배를 피우게 되었다. 나를 마흔 넷에 낳고 부터는 마마에 산후 후유증과 신경통이 심해서 그것을 잊어버리려고 담배를 배우셨다고 한다. 그래서 연세가 드시면서 더욱 담배에 손이 갔다. 물론 돌아가시는 날도 담뱃대를 물고 돌아가셨다.

 내가 시골 교사를 하고 있는 터에 그 해는 유독 음력설에도 공휴일이 없었고, 초사흘 날 토요일이 되어서 늦게나마 우리 식구들과 함께 백형 댁에 들렸는데, 큰 방에 들려 백형께 세배를 드리고 난 후 계중 문제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사랑채에서 벼락 치는 소리로 우리 어머니께서 나를 나무라셨다.

“왔으면 세배를 하여야 하지. 뭐하고 큰방에만 있냐?”

평생에 어머니께서 호통을 그렇게 치신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부리나케 신발도 못 신고 사랑채로 달려갔다. 마침 이웃 할머니께서 오셔서 계셨다. 그리고 즉시 세배를 드렸다. 자리에 앉자 말자 담배를 한 대 재었다. 그리고 성광표 성냥으로 확 그어 담뱃대에 불을 당기 신다. 그리고 말씀 하셨다.

“야야. 나는 오늘, 네 아버지한테 갈란다.”

하시면서 담뱃대를 입에 물고 게시다가 툭 떨어뜨려 버렸다.

“예?…….”

 그리고 돌아가셨다. 곰방대는 아니지만 담뱃대를 입에 물고 돌아 가셨다. 남정네였더라면 일하시다 곰방대를 물으셨겠지만 여인네로서 평생 속이 안 좋아 애용하시던 담뱃대를 물고 돌아 가셨다. 나의 어머니께서 말이다. 1976년 음력 정월 초사흘 날에 평생 애용하시던 담뱃대를 두고 말이다. 애고, 애고 울면 무엇 하리, 고애자(孤哀子)가.

( 푸른 숲/20100-2012.10.25.)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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