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수필 |
13. 방천(防川)
이영백
cheonglim03@hanmail.net
우리 고향동네에 갑자기 불도저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서 그 옛날 방죽〔防築〕은 모두 사라지고 제방(堤防)이 쌓아졌다. 바로 방천(防川)이 되어 버렸다. 방죽이 있던 시절에는 수양버들이 늘어져서 운치 있는 둑이었는데, 그곳에서 연애하는 사람, 수양버들 밑에 낮잠을 자는 사람, 우리 꼬맹이들 매미 잡고 숨바꼭질 하던 장소를 제공하여 주던 곳이었는데 홍수가 자꾸 나기 시작하면서 예산이 배정되었는가 보다. 1959년 태풍 사라호가 지나가면서 더욱 관(官)에서 제방공사를 서두르게 되고 말았다. 그 좋은 수양버들 모두를 베어서 팔아 마을 공동재산 기금으로 넣었다고 한다. 이제 그런 수양버들을 볼 수도 없어 졌다.
단지 불도저 소리가 윙윙 날 뿐이었다. 그리고 화물차가 바쁘게 운행되면서 제방에 쌓을 각진 돌만 실어 나른다. 구덩이 파고, 말목 박고 줄치고 가지런히 곱게도 제방을 쌓아간다. 온 동에 어르신들이 나오셔서 구경을 하면 막걸리 통이 나오고 술잔이 돈다. 마을의 홍수를 막으려면 현대식 방천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보면 농사지어 놓은 논에 수확도 못하고 모두 물에 떠내려간 것을 기억한다면 방천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 그것도 여름 홍수가 나기 전에 말이다. 예전에 둑은 비뚤비뚤 제 마음대로 있었는데 이제는 측량을 하고 스트레이트로 제방을 만들었기에 정말 기분 좋은 도로가 생긴 셈이었다.
나는 새벽 아무도 모르게 짧은 바지와 셔츠를 입고 우리 집에서 나와 방천 위에 달리기 준비를 하였다. 처음에는 잠깐 멈춰 서서 기초체력을 위한 순환운동처럼 가벼이 하여 이제 3Km의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이 길을 왔다갔다 세 번을 하면 자그마치 9Km코스가 된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학교 체육시간에 마라톤이 있다고 하여 미리 연습하여 두는 것이다.
먼저 동쪽을 향하여 달리면 방천 안쪽으로 우리 집 묘답(墓畓)이 있고, 홍수가 나서 떠내려 간 삭불이 집이 있던 곳도 지난다. 그리고 조금 달리니 우리 동네 신지식인이셨던, 1960년대 K상고를 나오신 동네 형님 집 앞으로 지난다. 이제는 셋째 형님이 장사를 하시던 조그만 초가 앞을 지난다. 곁에 철길에서 누워 자다가 팔다리가 절단 나서 절집을 하는 동네 젊은이 집을 지난다. 이제 우리 논이 있는 곳을 지나 동해남부선이 울산 쪽으로 향하는 철교(鐵橋) 앞이다. 이곳이 반환점이다. 다시 왔던 길을 돌아 숨을 몰아쉬면서 달린다. 어언 우리 집 앞 쪽으로 달리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내가 이렇게 자꾸 연습을 하면 그 옛날 손기정 선수처럼 되지 않을까 걱정도 하였다.
그리고 다시 달린다. 중보(中洑)가 방천을 따라가면서 연달아 같이 따라 온다. 그러는 사이에 아랫마을 당수나무가 있고, 상여집이 있으며, 삼 곳을 하던 곳까지 오면 예전에 우리 집에 세 들어 살았던 홈실 어른 댁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내 하천 둑 가까이에서 닭을 키우는 계사(鷄舍)가 나타난다. 그런데 닭똥〔鷄糞〕의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만다. 그래도 달리던 길을 달린다. 아랫 시래, 보칠보(寶七洑) 머리에 까지 왔다. 보칠보에는 물이 많이 생성 되어서 도랑 폭도 꽤 넓다. 이제 다시 우리 집 쪽으로 방천 위를 달린다. 길이 있어 달린다.
그 옛날의 방죽에 제방을 쌓아서 방천이 되고나서 자연히 길이 되어 자동차도 달리기 시작하였다. 방천은 홍수가 나면 물도 막아 주고, 우리에게 편리하도록 길도 내 주었다. 요즘 자가용을 타고 한 바퀴 둘러도 보았다. 방천은 우리를 잊지 않을 것이다. 그 옛날의 방죽도 생각이 나지만.
( 푸른 숲/20100-2012.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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