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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이씨 시조/차성이씨 시조

[스크랩] 차릉(車陵)?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만화리에 "차건신묘"로 통칭되는 무덤이

있습니다. 


기장군의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 http://culture.gijang.busan.kr/culture/ remain/un_cultural/un_cult8.as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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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건신의 묘는 기장읍 만화리에 있는 고분이다. 신라39대 소성왕이 어린 태자에게 위를

물려주기가 불안하여 늙은 제상인 차건신에게 유언을 남기니 즉위한 12세의 상장왕의

보상이 되었다.


그 후 공이 죽으니 왕의 예로서 장례하고 소성왕묘에 배향하고 묘는 이곳에 정하였다.

그리고 기장을 차성으로 성격시켰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이묘를 두고

33세의 이위의 묘라고 후손들이 주장하기도 해 분쟁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지금은

차씨 집안에서 조상의 묘로 관리하고 있다.


어쨌든 만화리 사람들은 이곳에 먼저 동신제를 드리고 그 다음에 당산제를 거행하는

것으로 관행을 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묘는 옛날 나라의 큰 공신으로서 백성들과

고을 사람들의 추앙을 받았고 사후에도 수호신으로 숭배를 받게된 분의 묘로 추정된다.


차릉으로 불리는 이곳 차건신의 묘는 누구의 묘로 중요성을 갖기 보다 이곳이 고대부터

마을사람들의 수호신 역할을 했다는 데 더 의미를 두는 사람도 많다. 옛부터 차릉에

먼저 벌초하고 소원을 빌면 소원성취를 이룬다는 전설이 있는 것으로 봐서 그런 의미는

더욱 확실해 진다고 할 수 있겠다. 잘 다듬어진 이곳도 한번쯤 방문해 볼 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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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전에는 지방 지정문화재였다가 그것이 해제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현재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위의 글을 보면

그 이유는 그 무덤이 공식적으로 확실하게 고증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 짐작됩니다.

사실 이런 것들은 중요한 점입니다.


건신(建申)은 건갑(建甲)으로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옛날에는 글자를 잘못

읽고 옮긴 경우도 많아 누군가 잘못 기록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되며

"차류대종회"에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건신으로 쓰기로 결정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차건신의 문헌적 고찰이 요구되며, "차성(車城)", "차릉" 등의 말에 대한

정확한 고찰도 요구됩니다.


차건신(건갑)이 실재했다 해도 그가 과연 연안차씨와 연결된 사람인지

단정을 내리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류씨만 해도

고려시대 초기에 이미 여러 류씨가 존재했고 그들 사이에 연관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내기는 어렵습니다. 라말 이전에 차씨가 있었다고 해도,

라말여초에 연안의 관향을 갖게 된 일부의 차씨들과의 관련을 100%

주장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미 조사해봤던 사항들도 있는데 정확한 내용이 기억에서 사라져

다시 확인해 봐야할 것들이 많이 있네요. 정리되는 대로 이 글도

수정할 생각입니다.


이런 것들과 관련해서 아는 것이 있으면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채하


출처 : 물고기와 물병
글쓴이 : 은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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