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엽서수필 5/또천달 형산강

(엽서수필 5) 또천달 형산강 73. 형산강과 시골이사

 

엽서수필 5 : 년의 빛 흐르는 형산강

73. 형산강과 시골이사

이영백

 

 형산강은 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아니하였다. 강을 조금 비켜나서 열심히 사느라 분주하였다. 적은 봉급이지만 젊으니까 그렇게라도 그 봉급으로 소금물 여과한 것처럼 짠 생활로 살았다. 사는 집은 늘 남의 집이다. 교사는 언제라도 16절지 공문서 한 장의 명령이 떨어지면 이사 가야 한다.

 신접살이 집은 우리 반 학부형 집이다. 새로 지은 두 칸짜리 집이다. 부엌에는 새카만 연탄 일백 장을 소복이 쟁여 둔 것이 배부르게 밥 먹는 것보다 좋았다. 큰방은 신혼 방이고, 작은 방은 서재다. 문학관련 서적을 할부로 사들여 진열하였다. 바람이 불어 문이 쾅 닫히어도 집주인에게 미안하였다. 남의 집에 세 들어 산다는 것이 늘 좌불안석이다.

 어느 여름날 큰집 경주에 다녀왔는데 우리가 없다고 우리 부엌에서 불을 지펴 긴한 음식을 하였기에 너무 더웠다. 도저히 이러한 곳에 같이 살 수가 없다고 판단하고 그 이튿날 건너 집으로 이사하였다. 가까워서 차에 싣지 못하여 책을 한 권씩 내가 손으로 들고 나르니까 반 아이들이 모여와서 거들어 주었다. 드론 타고 내려다본다면 마치 개미들이 나뭇잎 조각 한 장 물고 저네 집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두 번째 이사한 집에는 주인이 총각으로 울산에 소재하는 회사에 다녔다. 사실 주인이지만 토요일 오후나 되어서 돌아왔다. 주인은 주당 이틀 살았다. 우리는 일주일 내내 그곳에 사는데 주객이 전도 되었다.

인사이동으로 등 너머 학교에 전근하여 세 번째 집으로 이사하여야 하였다. 초임이었고, 학부형들도 전근되어 이사한다고 하니 많이도 배웅하여 주었다. 이삿짐 화물기사가 “선생님은 좋은 일 많이 하셨나 봅니다. 이사 가는데 이렇게 배웅을 많이 나온 사람들은 처음 봅니다.” “잘 한 것도 없는데요.” “아니에요. 어떤 이삿짐은 야반도주 하는 사람도 있어요.”

 강가에 살다가 바닷가로 와서도 늘 강을 잊어버리지 못하고 살았다. 교사 하면서 결혼하고 나서부터 도시로 나오기까지 6년 11개월 동안 자동차에 싣는 이사를 열네 번이나 하였다. 간혹 강을 따라 이사도 하였다.

 고향에서도 강의 건너편에 두고 살아서 건너 다녔다. 도시로 나오면서 형산강 서천 다리를 건너 왔다. 인생에서 이사는 어쩔 수 없는 행위인 것이다. 강을 떠나서 살 수 없다. 강과 이사는 함께 주고받는 어울린 일이다.

(20220730. 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