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수필 4 : 수필과 그림사이, 그 환희 |
65. 원두막에서
이영백
원두막(園頭幕)지키기다. 원두막은 낮에도 지키지만 밤에도 지켜야한다. 고향에는 밭보다 논이 많다. 그러나 극구 셋째형이 참외농사를 시작하면서 집에서 조금 떨어진 밭에 참외를 심기 전에 원두막부터 지었다.
원두막 짓기에는 나무를 모아서 네 곳에다 구덩이를 파고 기둥 세웠다. 이층인데 아래층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층에는 지붕을 이고, 네 군데에다 문짝처럼 짚을 엮어 달았다. 그것은 낮 동안에 사방을 관찰하여야 하고, 비오면 거적을 내려 비 피한다. 이층에 오르려고 사다리 놓았다. 바닥에는 송판을 구해다 걸치고, 거적 깔고, 목침과 이불 하나를 갖다 두었다. 찾아오는 손님을 위해 칼과 도마, 양은 그릇, 마대 포대 등을 갖다 놓았다.
원두막은 멀리서 지켜보면 여름농촌의 풍정을 대표할만한 풍경이다. 참외 사러 온 사람에게 그늘막이 된다. 처녀총각의 데이트 장소도 된다. 시골 버드나무가 곁들어진 풍경은 나이를 먹어 갈수록 사진처럼 찍힌 풍경이다.
참외새싹이 나오고, 줄기가 자라면서 갈매 밭의 흙을 덮기 시작한다. 샛노란 참외 꽃이 피기 시작하고, 동네 벌들이 참외 꽃 유혹에 수정된다. 장마기에 셋째형은 붓 들고 참외수꽃가루를 받아 암꽃에다 인공수정 한다. 열매 맺히고, 굵어지고 참외가 달린다. 그때 참외는 요즘처럼 노란색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질 참외라고 하면 표면에 길게 청 녹색 줄이 생긴다. 질 참외의 속을 열어 보면 벌겋게 보여 참 먹음직스럽다.
참외가 익어 가면 사람들이 원두막을 찾아온다. 원두막에서 참외를 팔기 시작한다. 현금으로 사러 오는 것이 아니고, 보리를 자루에 담아 와서 참외를 산다. 일종에 물물교환이다. 원두막 밑에는 마대포대가 쌓이고, 일층 바닥에서는 멍석 깔아서 되를 두고, 곡물 값을 정하여 참외를 판다.
원두막은 밤에도 지켜야 한다. 캄캄한 밤에 은하수가 내리는 한밤이 되면 플래시를 켜서 이쪽저쪽 수시로 불빛을 비춰준다. 참외밭주인이 지키고 있다는 표현을 그 불빛으로 대신한다. 간혹 밤에 참외서리도 당한다.
참외밭에 참외서리당한 경우도 있다. 그것이 못내 아까웠지만 시골이라 배고프고, 어린 아이들이 서리해서라도 먹고 싶은 것이 사실일 것이다. 그때는 그렇게 참외서리도 용인하며 살던 시절이다.
그래도 참외밭에서 원두막 지키기는 가장 한가로운 시간이다.
(2022010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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