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수필 4 : 수필과 그림사이, 그 환희 |
41. 박석골 도마뱀 산 논
이영백
그렇게 그곳에서 태어나 살았어도 그 산 이름을 이제 알았다. 대덕(大德)산! 불국사기차역에서 내려 절로 올라가는 왼편에 있는 산 이름이다. 중간 즈음에 연꽃못이 있다. 진사한 집안의 못이다. 그 못에서 보문 쪽으로 나갈 수 있는 산골길 걸어 들어가면 대덕산 박석골에 산 논이 있다.
혼자서는 그 산 논을 낮에 가려고 해도 무섭다. 박석골 산 논을 가려면 불국사는 세계적 관광지라 소 몰고 못 간다. 기차역에서 구정동 방형분묘 북쪽 끝에 해향못이 있다. 그 못 둘레 따라 대덕산 북동쪽 산 속으로 걸어가야 그 박석골 산 논을 소 몰고 갈 수 있다.
봄이 오면 물 잡아 벼농사 시작한다. 그곳에도 산 논에 논갈이 하고, 못자리는 평지에서 모를 뽑아 소등에 싣고 모내기 하러 간다. 산 논으로 서 마지기지만 그런대로 해마다 벼 수확이 수월찮으니 농사를 계속 지었다.
그곳에 모내기 하려면 일습 준비하여 간다. 새참이나, 점심 등을 미리 준비하여 세 마리 소등에다 나누어 싣고 간다. 아버지, 셋째형, 넷째 형, 큰 머슴, 중머슴. 꼴머슴, 나까지 우리 가족이 대이동한다.
산골이라서 벼 심기에는 물이 충분하다. 논갈이가 끝나고 물 잡히면 아버지 쓰레질 한다. 소등에서 내려놓은 모춤을 논둑에 갖다 둔다. 모를 네 춤씩 양손에 들고 아장아장 배달하면 힘 좋은 셋째 형이 논바닥 군데군데로 정확히 던져 놓는다. 이제 못줄 늘이어 모 심는다.
나도 못줄 늘이어 놓으면 곧잘 모를 심기에 어른을 흉내 내기에 충분하다. 모심기는 모를 왼손에 잡고, 땅에 꽂기 전에 미리 두세 포기씩 준비한 상태에서 오른손으로 적당깊이로 심는다. 아차! 한창 재미나 모를 심는 동안 논물에 동~둥~ 떠다니는 뭣이 있다. 뱀이다. “아버지 뱀이 있어요!” “아니다. 도마뱀이다! 안 물어! 걱정 말고 모나 심어라!”
넷째 형은 이미 알았는데 나는 도마뱀을 처음 보았다. 날 놀리려고 도마뱀을 잡아서 내밀었다. 꼬리를 잡았다. 도마뱀은 꼬리를 끊어버리고 도망친다. 그 후“대덕산 박석골 도마뱀 산 논”이라 이름 지었다.
대덕산 박석골 도마뱀 산 논에서 벼 수확량이 해마다 상당하다. 그곳에서 타작하여 가마니에 곡식만 담아 소등에 싣고 온다. 이제는 “대덕산 박석골 도마뱀 산 논”이라는 긴 고유명사만 남아있다.
(2021112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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