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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3/미늘

(엽서수필 3) 미늘 35. 술밥

 

엽서수필 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35. 술밥

이영백

 

 아버지는 농경시대(1899~1973)에 태어나 산 사람으로 자연스럽게 농사짓는 일을 많이 하였다. 농사짓기에는 힘이 들고, 새참도 먹어야 하였다. 새참은 백철주전자에 막걸리를 가득 담았다. 주전자 위에 먼저 김치 한 쪽 안주그릇을 얹고, 그 위에다 주전자뚜껑을 덮었다. 주전자 부리에는 가다가 잊어버리지 않도록 젓가락을 꼭 끼웠다. 어렸을 때 하는 일상이었다.

 주전자에 담아야할 막걸리 한 되 25원씩이나 주고 매일 사다 먹으려면 수월찮게 돈이 들었다. 아예 집에서 밀주를 담그려하였다. 일단 집에 있는 누룩과 술밥(고두밥/지에밥)과 술 단지, 물만 있으면 직접 담글 수 있다. 담근 지 사흘이 지나 뽀글뽀글 술 익으면 체에 밭아내면 된다.

 술밥은 물론 식구 여럿이 먹으려고 하는 끼니인 밥이 아니다. 단지 대주가 농사지으면서 허리 펴는 새참용이었다. 물론 온 식구 모두가 먹는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농사지어 먹고 살려면 대주가 일하는 데 술로 빚을 술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술밥을 고향에서는 “꼬두밥”이라고 부른다. 몰래 한 움큼 쥐고 나가 혼자 먹었던 그때가 즐겁다.

 술밥 짓기가 까다로웠다. 먼저 쌀을 네 시간이상 충분히 물에 불려서 바구니에 건져 놓아야 한다. 둘째, 한 시간이상 물을 뺀 다음 찜 솥에 보자기 깔고 쌀 넣고, 쌀 가운데를 수북하게 하지 말고 움푹하게 파놓는다. 셋째, 불에 올려 물이 끓기 시작한 후 30분 이상 두었다가 불 끄고 5분가량 둔다. 넷째, 다시 내려 펼쳐놓고 식힌다. 그것이 술밥이다.

 꼬두밥을 대량으로 구경한 것은 고향 선산에서 건너편에 있는 경주법주 공장이었다. 야산인 선산에 들렸다가 우연히 그 공장 마당을 내려다보았다. “셋째형님! 저 법주공장 마당에 온통 하얀 것이 뭔지요?” “응. 그것 꼬두밥 아이가. 법주 빚으려고 꼬두밥 지어서 막 식히는 중이란다.”정말 장관이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새참용 밀주, 막걸리 빚으려고 하던 술밥은 여러 번 보았지만 법주공장 꼬두밥을 그렇게 많이 본 것은 생전 처음이었다. 확실히 대량생산하는 공장에는 무엇이 달라도 달랐다.

 막걸리 담글 술밥 짓는 것도 어찌 보면 그 당시에는 국법어기는 일이다.

 술밥이 그리운 것은 식힐 때 한 움큼 집어먹던 추억이 그립기 때문이다.

(20210420. 화. 곡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