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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수필 3/미늘

(엽서수필 3) 미늘 18. 사그라짐에 대하여

 

엽서수필 3 : 일흔셋 삶의 변명 “미늘”

18. 사그라짐에 대하여

이영백

 

 흔히 “달도 차면 기운다.”라고 한다. 세상만물이 생성되고 소멸한다는 자연법칙은 무엇에나 적용된다. 인간, 겨우 몇 센티미터 살아 왔는데 소멸이 찾아온다고 한다. 사그라진다는 것이다. 젊어서는 이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아니하였다. 그래서 사그라짐에 대한 철학이 안 생긴 것이다. 나이 듦에 그 사그라짐에 대한 철학도 스스로 느껴져 알 수 있을 것이다

 사그라지는 모든 것, 소멸되는 모든 것은 사람이 살아오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방법이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곧 죽음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서양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는 일찍부터 알고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책을 저술하였던 것이다. 바로 “죽음”인 것이다.

 수선화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 꽃무릇이 핀다. 꽃대만 자라다가 잎이 여름에 먼저 피고 모두 진다. 초가을이 되어서 꽃대끝 부분에 밖으로 암술이 손가락 벌려 에워싸듯 하면서 속으로 꽃이 오글거리게 핀다. 그것도 부끄러운지 붉은색으로 활짝 누드화가 되었다. 끝내 그 꽃도 모두 사그라진다. 어찌 이리도 무슨 원수가 들어서 잎과 꽃이 만나지도 못하는 꽃이런가? 잎과 꽃은 그리워하면서도 만나지 못하고, 그렇게 서로 사그라질 뿐이다.

 잎의 그리움이 너무 지나쳐 그만 사그라지고, 늦게야 꽃이 핀다. 사그라짐에 서로 흔적도 못보고 그렇게 사그라지고 세대를 잇다니? 사람으로 친다면 무척 슬프다. 만나지보지도 못하고 헤어짐에 더욱 애잔하다.

 세상 일이 모두 그렇다. 있을 때 잘 모르고 살다가 사그라지고 난 후에 그리움이 발동하는 것이다. 생명이 붙어 있을 때 서로 만나 도란도란 얘기라도 나누어 볼 걸, 사그라지고 난 후 애통해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러나 이 또한 사그라짐에 새로 생성되는 자연의 법칙은 그 애달픔을 만들어 “문학”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고향 무영탑 전설에서 아사달과 아사녀는 이국까지 와서 못 만나고 모두 사그라졌다. 영원불멸의 탑만 남았다.

 불교에서는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싯다르타가 해탈한 모토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생은 모두 사그라질 뿐이다.

 대를 이어가는 변화무상한 자연법칙은 인생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러기에 사그라짐에 대한 철학을 먼저 알고 순수하게 놀러가듯 맞이하자.

(20210321.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