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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늚이의 노래 1

(엽서수필) 47. 엄마와 물외냉국

47. 엄마와 물외냉국

이영백


 오이를 경상도 경주에서는 할머니들이 곧잘 “물위〔무뤼〕”라고 부른다. 분명 엄마도 그 부류에 속하니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참)외가 아닌 물외거나 발음 편의상 “물위”라고도 부른 것은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나 혼자가 아닌 경주사람들에게는 학교 공부 이전에 모두 그렇게 “물위”라고 부르고, 그렇게 들리고, 그렇게 살았다.
 엄마는 사시사철 없이 끼니때마다 반찬 해 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것도 냉장고 없던 여름이면 덥고 반찬 만들기도 바빠서 늘 고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아마도 “물외냉국”이었을 것이다. 잘 자란 물외 하나 뚝 따다가 씻어 도마에 채 썰어둔다. 시원한 우물물 퍼다 간장으로 간 맞추고 물외 채를 부으면 가장 손쉽게 “물외냉국‘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땡볕 내리쬐는 한여름에는 시원한 이 냉국이 먹기도 쉬웠고, 반찬을 대신해 주어서 더 좋았을 것이다.
 어느 날 엄마는 다가오는 더위이기는 방법을 생각해 내었다. 바로 오이 시렁재배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온실 재배라는 것은 상상도 못할 시기였기에 시렁재배는 획기적이었다. 긴 막대기를 모아 기둥을 만들고 그 위에 가는 막대를 얹어 짚으로 얽어매어 만들었다. 오이씨 심어 떡잎부터 속잎 나오도록 기다리고 물 주었다. 어느 샌가 덩굴줄기가 자라 올라 시렁으로 번져 가득하였다. 온통 오이 잎으로 시렁을 모두 덮었다. 노란 오이꽃을 피워 벌 ㆍ 나비 찾아들어 처음부터 길쭉한 열매를 맺었다. 온통 노란 꽃을 열매 끝에 달고 너도나도 물외가 달렸다. 멀리서 보면 수세미 같다가 차차 햇볕 받아 익으면 싯누런 한국 토종 물외가 열리었다.
 요즘은 개량오이 때문에 토종 한국 물외가 잘 보이지 않는다. 난 오래 전 중국 장수 왕릉을 들렸다. 8월에 갔기에 무척 더웠다. 소녀가 오이 밭에서 싯누런 물외 세 개를 들고 나왔다. 손짓, 발짓으로 파느냐고 하니 5위안 이란다. 외국에서 토종 물외맛보면서 오랜만에 바로 그 맛을 찾았다.
 지금 도회지 살면서 싯누런 토종 물외는 구경하기조차 어려워졌지만 우리 집 옹 우물에 물을 퍼내어 여름날 오이냉국 만들어 먹었던 그 시절이 자꾸 눈에 아른거린다. 여름날 농촌에서 삼시세끼 밥반찬 만들어 많은 권식들에게 기쁨 줄 수 있는 것으로 오로지 오이냉국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여름 엄마는 오이가 비타민 C와 카로틴의 활성산소를 분해하는 작용을 통하여 암세포 발생을 억제시킨다는 것을 과연 알았을까?
(20200518.성년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