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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이른 아침에

[스크랩] 엉킨 실타래를 풀어 감는다/청림/이영백

● 수지과제 7.어머니, 부모님, 가족(4/20)

 

엉킨 실타래를 풀어 감는다

청림/이영백

  어머님 돌아가신지 42년이 지났지만 그 옛날 내가 초교 졸업하고 신학문을 하지 못하면서 서당에 다니던 그때가 갑자기 생각난다.

  나는 열 번째 막내였다. 형님들은 장가가서 분가 하였고, 누나들은 시집가서 살았고 나는 늦둥이로 엄마 일을 거들어야만 했다. 엄마 혼자 집안일을 모두 하는 것도 처량해 보였다.

  엄마 혼자 방바닥에 버선 벗은 채 맨발로 다리를 벌리고 앉아 양발 엄지발가락에 실타래를 걸었다. 그리고 무엇이 그리 바쁘신지 실꾸리에 오른쪽으로 치우쳐 감고, 다른 쪽으로도 힘겹게 몸을 흔들면서 감아대셨다. 손 안에서 실꾸리가 베어링 위를 돌 듯 요리조리 뱅글뱅글 돌리면서 혼자서 잘도 실을 감으셨다.

  봄, 여름, 가을도 지나고 이제 쉴 만도한 계절 겨울이 왔다. 무슨 일이라도 심심풀이 하듯 엄마는 혼자서 실빵구리*를 감는다. 두 다리를 벌려 실타래를 양 엄지발가락에 걸고 혼자서 실꾸리를 감고 있다. 지속적으로 벌려 놓은 다리가 저려 오실 것이다. 또, 두 팔로 저어가면서 감아야 하기에 팔도 아파 오실 것이다.

  어린 내가 가만히 다가가 엄마 양 엄지발가락에 걸린 실타래를 빼서 내 팔 손목에 걸었다. 엄마가 실 감으려는 쪽으로 몸을 돌려가며 쉽게 풀리게 감을 수 있도록 하여 드렸다. 엄마의 아픈 팔, 다리를 쉬게 하고 싶었다.

  나도 그렇게 팔 벌리고 몸을 움직였으니 이제 팔이 아파온다. 엄마가 얼른 알아차리고서‘이제 네가 감아볼래!’하신다. 그래서 내가 실꾸리에 실을 감고, 엄마가 팔 벌려 실타래를 걸친다. 오후 늦게부터 시작한 작업이라 동해남부선 부산 쪽으로 가는 저녁 통근기차 지나는 기적소리가 들린다.

  실패에 실꾸리를 감았다. 엄마가 손가락에 걸고 팔을 벌리고 앉아서 실을 풀어 주고 있었다. 나는 엄마의 아픈 팔을 빨리 해제해 드리고 싶어서 얼레에 빨리 감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보니 실은 조금 빨리 감기는지는 몰라도 금방 내 팔이 아파 왔다.

 “복아! 그렇게 빨리만 끝내려고 하면 안 되지. 무슨 일이든지 천천히 정확하게 해야지.”

엄마의 말씀을 듣는 도중에 감던 실패인 얼레를 그만 놓쳐버렸다. 팽그르르 굴러서 농 밑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다시 찾아 감는데 긴급조치가 발효되었다.

“지금은 여기까지. 이제 저녁 해야지.”

  그리고 늦은 저녁을 먹었다. 다듬잇돌 위 반짇고리에는 조금 전 실 감던 얼레와 실타래가 그대로 담기어 있었다. 저녁 먹고 얼른 실감아 달라고 조르는 것처럼 보였다.

  저녁 먹고 동네 한 바퀴 돌고 다시 방에 들었다. 여전히 엄마 혼자 처음 실타래 실을 감듯 자세를 하고 감고 계셨다. 이제는 어두워서 등잔에 희미한 호롱불을 밝히고 실을 감는다. 생 울타리 뽕나무에 초승달이 걸리었다. 이런날 꼭 부엉이가 앉아 울면 더욱 무서움을 탄다. 화장실 갈 일이라도 다리를 꼬고 고쳐 앉으며 실타래의 실을 계속 풀어 감는다.

  왜 실타래에 실을 감아야 하는가? 잘 감기어 있는 좋은 상품을 사다 쓰면 이런 수고로움을 덜 텐데. 그것도 아버지는 왜 엉킨 값이 싼 실타래를 구입하셨을까? 어쩌면 우리들 마음을 시험해 보기 위한 것이거나 아니면 분명 아버지로서는 경제적으로 값이 싼 실타래를 고의적으로 사 오셨을 것이다.

  이를 보고 참지 못하여 이번에도 자원하여 실 감는 일을 나는 다시 시작하였다. 희미한 호롱불 밑에서 실을 감는다. 손에 잡힌 얼레는 돌리는 수만큼 소복소복 부피를 더하여 고루고루 볼록하게 올라 왔다.

  간혹 엉킨 실은 걸리어서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얼레를 넣고, 빼고, 돌리고, 이리저리해서 엉킴을 풀어내어서 실을 끊지 아니하고 감았다. 성질이 급한 사람이라면 가위 들고 싹둑 잘라 버렸을 것이다. 꾹 참고 엉킨 실을 풀어내고 애를 써서 끊지 않고도 계속 감을 수 있는 것은 실타래를 풀어 나가는 것에 희열을 느꼈는지 모를 일이다. 마치 3차 방정식 해를 구했던 것처럼 즐겁게 실을 감아 나갔다.

  엉킨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가며 절대 끊지 않고, 실꾸리를 감았다. 그러면 소복소복 감겨 올라오는 실꾸리 모습이 모자간의 정으로 새록새록 돋아났다. 이는 마치 ‘배 먹고 이 닦기**’처럼 엉킨 실을 감아 득을 보고 삶에서 화를 사그라지게 하는 연습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엉킨 실타래를 풀어 감고 있던 엄마가 그리워 지는 것은 유난히 지금이다. 아! 삶의 실태래여!

(청림/20100-2017.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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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빵구리 : 둥글게 감은 실. 표준말은 실꾸리다. ‘실빵구리’는 경주 사투리다.

**배 먹고 이 닦기 : 耳談續纂(이담속찬)에 「啖梨之美 兼以濯齒(담이지미 겸이탁치)」‘배 먹고 배속으로 이 닦는다.’라고 하였다.

출처 : 수필과지성
글쓴이 : 靑林 이영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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