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수필 |
23. 알 철모 기합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군대훈련으로 들어가서 제일 힘들었던 것이 나는 파이버와 철모(=특수강)를 함께 쓰면 고개가 비뚤어졌다. 머리가 바로 서 있지를 못하였다. 그만큼 철모를 쓴다는 것이 무게가 느껴지는 것이다. 파이버와 철모의 무게가 자그마치 1.5kg이다.
군대 위문공연으로 그렇게 통제를 잘 받던 우리 RNTC 훈병들을 한없이 해이하게 만들었다. 단단히 기합을 받고 새로이 날이 밝기도 전에 새벽 다섯 시 특별기상을 시켜 중대 사전에 집합시켰다. 웬 특별기상이냐고 생각하고 일어나서 단독군장을 하는데 연락이 왔다. 오늘은 기합의 연장으로 파이버를 쓰지 말고, 알 철모만 쓰고 집합하라는 것이다.
철모를 쓰려면 안에 파이버를 쓰고, 그 위에 철모를 써야 하는데,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 어제 밤에는 원산폭격 기합을 무려 3시간이나 받아서 그만 머리가 쑥 들어 가 있었는데, 이럴 수가 있나? 자고 일어나니 그렇게 짓누른 머리가 밤새껏 퉁퉁 부어서 훈병의 머리에 혹이 하나씩 생겨 있었다. 아니 낙타봉의 외로운 육봉肉峰 하나가 생겼다. 그런데 알 철모를 쓰고 단독군장을 하라니 정말 얄미웠다.
군대는 죽지 않을 정도면 명령을 수행하여야 하니 알 철모를 쓰지 않을 수도 없었다. 부어오른 머리에다가 알 철모를 쓰고 보니 불이 나는 것 같았다. 부은 머리에 아무른 약도 바르지 아니하였는데 그것도 새벽부터 깨워서 알 철모를 씌우니 우리들은 무척 화가 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파이버를 안 쓰고 알 철모만 쓰면 독일병정처럼 사람들 얼굴이 뭔가 모자란 바보들의 얼굴이 되고 만다.
위문공연을 생각하면 할수록 미웠다. 우리는 이런 현실이 무척 미웠다. 원산폭격이라는 기합을 받는 요령도 모르고 하라는 대로, 곧이곧대로 기합을 받은 것이 원죄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원산폭격 기합을 받을 때는 되도록이면 두 다리를 곧추 세워야 머리에 몸무게의 부담이 가지 않는데 모두가 미래 교사가 될 사람들이라 교관이 시키는 대로만 착실히(?) 기합을 받았으니 머리 위가 모두 퉁퉁 부어올랐다.
어찌 우리들에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정말 머리 위에 혹이 생겨서 혹 위에다가 약 1Kg가량의 알 철모를 얹게 되니 머리 위에서 불이 안 날 수가 있겠는가?
우리들이 아프다고 내무반에만 앉아 있을 수도 없다. 그것도 알 철모 쓰고, 선착순으로 집합하라는 청천벽력 같은 명령만 자꾸 떨어지고 있었다. 선착순에는 항상 먼저 가야한다는 잠재 의식화된 기억으로만 존재하고 있다. 아픈 것도 참고 또 참으면서 중대 사전에 집합하였다. 아침 여름이라지만 추웠다.
우리는 왜 이리도 천덕꾸러기로 변해가고 있을까? 중대 사전에 모인 모두가 알 철모만 썼기 때문에 고개가 돌아가고, 그의 울상이 되어 찌그러진 얼굴이어도 오와 열을 맞추고 번호를 붙이면서 다음의 명령을 기다렸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용케 괴로움을 더 하려고 구령을 연습시키고, 부모님께 기도하고, 고향을 향하여 절도 하고, 드디어 구보를 시작하였다.
구보를 하며 뛰어 가는데 약1kg 알 철모 사이로 귓전에 바람이 와 닿는데 쏴아∼하는 소리가 나면서 머리 위의 육봉이 자꾸만 쑥쑥 아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저 몽롱하여 온다. 그리고 구보하고 있다.
정말 사람으로 이런 기합을 주는 교관이 얄미운 것은 간밤에 짓눌러 들어가게 하고, 밤새껏 부어올라 육봉을 만들었고, 새벽잠을 깨워 알 철모를 씌어서 구보로 달리게 하니 이 세상에 어찌 이리 나쁜 짓만 하고 있는가?
물론 군대훈련을 오기 전에 군대이야기를 형들로부터 많이 들어는 보았지만 이러한 기합으로 우리가 고생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푸른 숲/20100-2013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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