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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인)푸른 숲 수필가·20100/청림수필집·이군훈의 단풍하사

[스크랩] (푸른 숲 제8수필집)이군훈의 단풍하사-08.미제가 다른 이유

신작수필

08. 미제가 다른 이유

이 영백

cafe.daum.net/purnsup

 

 3일차 교육을 마치고 내무반에 들러서 기진맥진하였다. 사제私製 양말인 국산양말을 신고 입소하였는데, 기차 타고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도 양말이 펑크가 나서 3일간 군화를 신고 뛰고, 훈련 받았더니 모두 헤어져서 양말이 없어졌다. 맨살 발로 교육을 받고 있으니 뒤축을 갉아 먹어 피가 흐르고 있었다. 피 범벅이 되어서 걸음도 엉금엉금 걸어 다녔다. 이런 상황에 난데없이 내 이름과 동시에 ‘151번은 RNTC 학생대 행정본부’로 오라는 전달을 받았다.

 아니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행정본부에서 나를 찾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혹시 가서 기합이나 받지 않는가? 그리고 행정본부에 들어가려면 기간병들이 있고, 혹시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었다. 오라니 어쩔 수 없이 찾아갔다. 본부 사무실에 노크를 하고 기운도 우렁차게 구호를 붙이며 경례를 하여야 했다.

“충성! 교번 151번 이영×후보생 행정본부의 호출로 왔습니다!”

 천지가 조용하였다. 기간병 네 명이 행정실에 앉아 있고, 실장, 반장 책상이 보인다. 실장 자리에는 사람이 없었고, 반장 자리에 한 분이 군 러닝셔츠 바람으로 앉아 있었다.

“어이, 그래 자네가 시동矢洞 사람인가?”

“예? 제 고향은 경주시 시래동時來洞입니다.”

“그래. 그래 시동 옆이지.”

“예. 맞습니다!”

“됐어. 그래. 여기서 고향 친구를 만났네. 하하하. 김상병! 여기 주스 한 잔 가져와!”

“예!”

“여기 앉아! 괜찮아! 앉아. 사실 말이지 나는 고향이 경주 동천이고, 우리 처가가 시동이지. 시래동은 시동 가는데 있지.”

“예.”

“그래. 누가 묻거든 고향 형님이라고만 해라. 괜찮아. 이 사람아! 그래 대구교대 다니지? 이제 1학년이네.”

“예. 맞습니다. 1학년으로 RNTC에 입단한 초년병입니다.”

“그래. 이제 말 잘 하네. 훈련도 처음이라 어려운 것 많지. 제일 필요한 것 여기 써봐라. 내 구해 주마. 고향 동생한테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지. 여기 적어라!”

 나는 종이와 볼펜을 받아서 적기 시작하였다. ① 미제 양말 4켤레/ ② 피부 터진 데 바르는 연고/ ③ 볼펜 두 자루/ ④ 편지지 1묶음 등이라고 써서 드렸다.

“알았네. 피곤하지. 밤에 내가 내무반에 찾아 갈게. 5구대 151번 찾으마. 좋은 막걸리 두 되 받아 갈께.”

“아니 훈련 중에 막걸리는요? 안 되는데요.”

“알았어. 이 사람아! 내가 행정 반장인데 뭐가 안 돼!”

“예. 고맙습니다.”

 나도 모르겠다. 정말 피곤한데 막걸리 한 잔 마시면 피로가 저절로 풀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군 훈련 중에 막걸리라니 그저 날 떠 보려고 하는 말씀일 것이라고만 여겼다.

 우선 발뒤축이 까져서 미제양말과 연고만 구할 수 있어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였다. 속으로 이런 쾌재를 부르고 있는데, 기간병이 주스를 구해 왔다. 잔 두 개와 환타 한 병이었다. 군대에서는 명령만 떨어지면 어디에 가서라도 구해 오던지 구해다 놓는 것이라고 누누이 설명은 들었다.

 훈련을 마치고 환타, 시원하게 냉동한 환타는 신선이 먹는 식품이었다. 냉수도 잘 못 먹는 판에 환타라니. 내가 분명 군대 훈련을 들어 와서 신선을 만난 것이 아닌지 의심되기도 하였다.

 정말 우리나라는 당시(1971년)까지만 하여도 국산양말 만드는 기술이 그냥 모양만 흉내 내었지, 그 질은 보증할 수가 없었다. 기차 타고 가만히 앉아 왔는데 국산양말이 펑크가 나서 나의 발뒤축을 모두 갉아먹어 피범벅으로 만들고 말았든가.

 나는 설마, 설마 하면서도 기대를 잔득하게 되었다. 제일 힘 드는 것이 발뒤축이 까져서 피가 나니 우선 걸음을 잘 걷지 못하여 훈련병으로서 가장 큰 문제가 아니던가?

 아니나 다를까 구대에 돌아와 앉자말자. 제 까닥 미제양말 6켤레와 연고, 편지지, 볼펜 한 타스 등을 기간병이 들고 나를 찾았다. 먼저 발뒤축에 엉겨 붙은 핏덩이를 겨우겨우 뜯어내고 연고를 살짝 발랐다. 미제 양말 두 켤레를 한꺼번에 신었다. 아니 날아갈 듯하다. 그 아픈 발뒤축의 살갗도 연고제를 만나 언제 아팠더냐할 정도로 효과를 보았다. 미제양말이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다.

 미제양말은 행정반장 정병장님이 베트남에 파병되었다가 가지고 온 양말이었다. 감히 그 양말을 나에게 선선처럼 주시다니 황공무지로소이다. 󰃁

(푸른 숲/20100-20130602.)

출처 : 푸른 숲/20100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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