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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이씨 시조/차성이씨 비조(鼻祖)

[스크랩] 경주이씨 시조 휘 알평공 경모비 - 차성이씨의 비조(鼻祖)

경주이씨 시조 휘 알평공 경모비(문)

- 차성이씨의 비조(鼻祖)이시다.

 

 

  경주이씨시조휘알평공경모비

 

  신라의이천년역사는꿈같이지나갔건만월성옛터에는돌한덩이풀한포기마다조상의숨결이배었고

  축복받은자손들이대대로그전통그문화이어내려오늘을누리는것생각해보면어찌느껍지아니하냐  

  삼국사기와삼국유사를비롯하여동경지와가승등옛문헌을상고하건대신라는본시진한의땅으로서

  거기여섯마을이있었고그중에서가장으뜸가는마을은알천양산촌이며그마을의어른은알평이신데

  처음에하늘로부터내려오신곳을박바위라부르니우리겨레의옛신앙인밝음을뜻한것임은물론이다

  한의제지절첫해임자기원전육구년삼월초일일알평을비롯한여섯마을의어른들은자제들과더불어

  알천언덕위에자리를같이하고앉아여섯마을전체를다스릴거룩한이를받들어모실것을의논했었다

  그리고모두함께높은곳으로올라가멀리남쪽을바라보니양산밑나정가에상서론빛이땅에드리우고 

  거기흰말한마리가무릎꿇고절하는형상을짓고있으므로달려가보았더니자주빛나는큰알이있었고

  그알에서용모단정한동자가나와뒷날십삼세되던한의제오봉첫해갑자에왕으로추대되어즉위하니

  그가바로신라의첫임금박혁거세왕이라알평어른이야말로신라건국의첫장을꾸미신원훈이거니와

  다만하늘에서내려오시고알에서나오셨다는것들은우리옛조상들의신성함을말한귀중한기록이다

  그로부터백년이지나제삼대유리왕구년서기삼이년에여섯마을의이름들을고치고성씨를내릴적에

  알천양산촌은급량부라일컫고이씨로서성을삼아비로소경주를본관으로한큰집안이열리게되었고

  무릇이천여년을거쳐오는동안에차성우계합천가평평창아산재령원주흥양등많은지종으로나뉘어

  가지와줄기마다꽃피고열매맺듯역대를통하여뛰어난문무장상들이헬수없이배출되었음을보거니

  이어찌깊은뿌리에서솟아오르는진액의덕택이아니며또한이어찌시조의끼치신은혜가아닐까보냐

  그의혈통을받은자손들이거룩한유적지를그냥보지못하여순조때표암위에시조의자취임을새겼고

  순종때에는바위아래표암제를세웠으며또근래에국가에서거룩한유적임을찬양하여묘우를세우고

  터전을확장하며장원과송죽으로경내를미화하여조상을사모하는자손들의마음은기쁘기그지없다

  그러나공의사적은결코한씨족의역사만이아니라우리민족사의근원이므로나는굳이그유적을찾아

  알천동북쪽금강산내린맥이마지막맺힌표암위에올라눈을감고이천년전민족의옛조상을사모하며

  다시그혈통의큰인물들이대대로겨레위해큰업적끼친것들을헤아려볼때감격한마음을금할길없다

 

       명활산 금오산 선도산이 에워 둘렀고 문천이 알천이 형산강으로 흘러드는 곳

       신라의 옛땅 서울 알평어른 내리신 자취 이천년 묵은 역사 흐린듯 또렷도 하다

       옛 조상 축복을 받아 자손과 겨레 영광 있으리

 

  일구칠구년 십일월 십일일      후학   전주  이  은  상  글        후학  동래  정  하  건  쓰다

                                       후학                    병  철 제자  후예              약  우  새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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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경주이씨중앙화수회 간행 표암에서 옮겼음.

            慶李 首分籍宗 車城李 40世 泳伯 옮기다.

 

 

----> 漢字를 포함한 원문 보기

 

 慶州李氏始祖諱謁平公景慕碑

 

  新羅의二千年역사는꿈같이지나갔건만月城옛터에는돌한덩이풀한포기마다조상의숨결이배었고

  축복받은자손들이대대로그전통그문화이어내려오늘을누리는것생각해보면어찌느껍지아니하냐  

  三國史記와三國遺事를비롯하여東慶誌와家乘등옛문헌을상고하건대新羅는본시辰韓의땅으로서

  거기여섯마을이있었고그중에서가장으뜸가는마을은閼川楊山村이며그마을의어른은謁平이신데

  처음에하늘로부터내려오신곳을박바위라부르니우리겨레의옛신앙인밝음을뜻한것임은물론이다

  漢宣帝地節첫해壬子기원전六九년三월초一일謁平을비롯한여섯마을의어른들은자제들과더불어

  閼川언덕위에자리를같이하고앉아여섯마을전체를다스릴거룩한이를받들어모실것을의논했었다

  그리고모두함께높은곳으로올라가멀리남쪽을바라보니楊山밑蘿井가에상서론빛이땅에드리우고 

  거기흰말한마리가무릎꿇고절하는형상을짓고있으므로달려가보았더니자주빛나는큰알이있었고

  그알에서용모단정한동자가나와뒷날십삼세되던漢宣帝五鳳첫해甲子에王으로추대되어즉위하니

  그가바로新羅의첫임금朴赫居世王이라謁平어른이야말로新羅건국의첫장을꾸미신원훈이거니와

  다만하늘에서내려오시고알에서나오셨다는것들은우리옛조상들의신성함을말한귀중한기록이다

  그로부터百년이지나제三대儒理王九년서기三二년에여섯마을의이름들을고치고성씨를내릴적에

  閼川楊山村은及梁部라일컫고李氏로서성을삼아비로소慶州를본관으로한큰집안이열리게되었고

  무릇二千여년을거쳐오는동안에車城羽溪陜川加平平昌牙山載寧原州興陽등많은지종으로나뉘어

  가지와줄기마다꽃피고열매맺듯역대를통하여뛰어난文武將相들이헬수없이배출되었음을보거니

  이어찌깊은뿌리에서솟아오르는진액의덕택이아니며또한이어찌始祖의끼치신은혜가아닐까보냐

  그의혈통을받은자손들이거룩한유적지를그냥보지못하여純祖때瓢岩위에시조의자취임을새겼고

  純宗때에는바위아래瓢巖제를세웠으며또근래에국가에서거룩한유적임을찬양하여廟宇를세우고

  터전을확장하며장원과송죽으로경내를미화하여조상을사모하는자손들의마음은기쁘기그지없다

  그러나공의사적은결코한씨족의역사만이아니라우리민족사의근원이므로나는굳이그유적을찾아

  閼川동북쪽金剛山내린맥이마지막맺힌瓢岩위에올라눈을감고이천년전민족의옛조상을사모하며

  다시그혈통의큰인물들이대대로겨레위해큰업적끼친것들을헤아려볼때감격한마음을금할길없다

 

       明活山 金鰲山 仙桃山이 에워둘렀고 蚊川이 알천이 兄山江으로 흘러 드는 곳

       新羅의 옛땅 서울 謁平어른 내리신 자취 二千년 묵은 역사 흐린듯 또렷도 하다

       옛 조상 축복을 받아 자손과 겨레 영광 있으리

 

  一九七九년 十一월 十一일      후학   全州  李  殷  相  글        후학  東萊  鄭  夏  健  쓰다

                                       후학                    秉  喆 제자  후예              若  雨  새김 

 

 

 

 

    * 여기서 이 글을 옮겨 놓은 것은  인터넷에서 오자(誤字)투성이를 올려 두어서 고치자함에 있다. 물론 우리 비조(鼻祖)의 경모비이므로 우리도 잘 알아야 합니다.

 

 아래 참고자료는 우리 차성이씨(車城李氏 : 시조 경주이씨 33세 李渭, 車城君. 묘소재- 부산광역시 기장군 만화동 차성군릉->약칭 차릉)로서는 대단히 중요한 자료이다.

 왜냐하면 분적종중에 우리가 제일먼저 분적된 경주이씨 사료중에 공인된 것이 처음이다. 그 전에는 마냥 원대손(遠代孫)으로 표현되어 왔다. 왜냐하면 알평공이하 34세는 모두 잊어버리고 있다가 합천이씨에서 이 자료를 밝히니까 어쩔 수 없이 경주이씨중앙화수회에서 공개 인정하게된 역사적 사료(史料)인 것이다.

 이제사 이 글을 본인도 공개하게 된 것이 너무 부끄럽다. 진작에 세상에 얄려져서 경주이씨에서 33세 이위가 차성이씨 시조인 것을 알려었어야 했던 것이다. 우리 분적종이 아니 차성이씨에서 그렇게 갈구하던 자료를 늦게사 인터넷 시대에 이제야 밝히게 된 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늦었다고 알았을 때라도 공개하게된 것은 천만 다행이다.

 우리 씨족사 중에 시조를 모르는 씨족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는 이제라도 떳떳이 慶李33世 李渭가 시조라는 것을 경주이씨에서 밝히게 된 것이다.  

 

 

 

 

 아래보인 교양지(창간집)는 1981년부터 발간하여 몇년간 지속되다가 발간이 중지 되었다. 4집에는 필자의 명의로 분적종 글을 실었다. 4집은 추후 공개하겠다.

 

 

  세월이 얼마나 좋아졌는데 밝힐 것은 밝히고 묻을 것은 묻어야 할 시대다. 그래서 나는 이 자료를 먼지를 털고 다시 인터넷 세상에 내 놓게 된 것이다. 부디 車城李氏 宗員들은 관심가져 주시기를 기대 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자료를 공개할 것입니다. 청림.

 

 

 

 

 

 

 

출처 : 차성이씨 호군공파종회
글쓴이 : 62seons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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