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수필 4) 수그사이 환희 제11부 사람과의 환희 95. 초임학교 J교장선생님
엽서수필 4 : 수필과 그림사이, 그 환희 |
제11부 사람과의 환희
95. 초임학교 J교장선생님
이영백
물론 그 전에도 많은 사람을 알고 살아왔다. 그러나 첫 월급을 받는 직장에서 근무하고부터 공식적으로 기관장을 만난 것은 생애 처음이다. 바로 첫 직장의 교장선생님이다. 장인석 교장선생님! 동향인 경주인이다.
“이 선생님! 이곳에서 만났네요.” “예. 반갑습니다.” 그렇게 1973년 5월 1일자 발령인데 이틀이 지난 3일(금요일)에서야 근무지에 도착한 것이다. “발령통지엽서”가 큰 형님 집의 거름 터에 날아다니던 것을 질녀가 주워서 알게 되었다. 우편배달부는 교사발령통지서 엽서 한 장을 보통우편물이라 마당에 던져두고 가버렸던 것이다. 중요한 서류인데….
J교장선생님은 학교 담장 곁 사택에 살았다. 밤에 사택으로 찾아뵈었다. 그렇게 교장선생님과 긴 담소하고, 차도 한 잔 얻어마셨다.
호봉 재 획정으로 J교장선생님 비밀을 알았다. 인사기록카드를 정리하면서 보니까 교감경력이 없다. “교장선생님! 교감경력이 없으십니다,” “예. 그 얘기를 하자면 길지요. 6ㆍ25전쟁 중에 강원도 미수복지인 험지에 발령을 받았어요. 그곳에 5년 복무하면 교장자격을 준다는 조건에서 그렇게 근무하였지요. 낮에는 대한민국 태극기 달고, 밤에는 붉은 무리들이 나타났지요. 그래서 나는 교감경력이 없습니다.”
처음 맡은 학년은 4학년이다. 5월 3일 최초로 쉰 명의 어린 남녀 학생들 일백 개 눈망울과 마주하였다. 새카만 얼굴에 일백 개 검은 눈동자는 반짝 빛이 났다. 1973년 바닷가 사람들의 생활은 무척 어려운 살림살이다. 두 반이 되지못하여 한 반으로 만들었기에 학교에서 가장 많은 숫자의 학생들이 우리학급이다. 어찌 초자 교사에게 이러한 짐을 지우게 하는가?
처음 4학년 담임 선생님은 총각으로 근무하다 1973년 4월 10일 군대영장이 나와 입대하였단다. 약 20여 일간 담임 선생님도 없이 자습만 하였다. 초교에 담임 선생님이 없으면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자습만 하게 된다.
초임에서 4학년 담임을 맡아 공부하고 있는데 불러 교장실에 들어갔다. “이 선생님! 이 아이 제 여식(女息)입니다. 잘 봐 주이소.” “예? 예.” 한 학년에 한 반밖에 없으니 저절로 내 반에 들어와 쉰한 명이 되었다.
J교장선생님과 2년 10개월을 같이 근무하였다. 교장선생님 딸도 그렇게 나의 제자가 되었다.
(20220227.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