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수필 4

(엽서수필 4) 수그사이 환희 89. 8년 퇴직금 받다

청림수필작가 2022. 2. 17. 00:23
엽서수필 4 : 수필과 그림사이, 그 환희

89. 8년 퇴직금 받다

이영백

 

 1981년 초등학교 8년 경력으로 경주시교육청에 퇴직금을 신청하였다. 그때까지도 아직 대구 동구 반야월인 서호동에 살 때다. 퇴직금은 농협으로 통해오는데 반야월 근처에 농협이 없다. 엽서 한 장이 왔는데 “귀하가 신청한 퇴직금이 경산농협에 도착하였으니 신분증과 도장을 지참하여 찾아가라”고 하였다. 혹시 거금인가하면서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또, 퇴직당시 월성군이었는데 관할 교육청은 통합되어 경주시교육청이다. 퇴직하면 끝이라고 생각하였는데 1981년 4월 25일자 퇴직자로 3월에 받은 상여금 중에 일부금액을 반환하라고 하였다. 199,000원 봉급에 상여금이 본봉 11만 원으로 이중에 덜 근무한 기간 1개월 5일 상당인 1/3해당 금액을 반환하였다. 경주시교육청 관리과에 33,000원을 반납하였다.

 초등학교 8년 봉사에 대한 퇴직금을 찾으러 경산농협까지 찾아갔다. 대구시내 대학에 근무할 때라 오후에 조퇴하고, 경산군 읍에 소재한 농협까지 버스타고 찾아갔다. 그때까지도 나는 은행계좌를 만든 적이 없다. 퇴직금은 응당 찾아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다.

 경산농협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들어갔다. 여직원이 어찌 왔느냐고 물었다. 퇴직금 알리는 엽서쪼가리를 내밀었다. 퇴직금 찾으러 오셨네요? 어떻게 드릴까요? 응급 결에 현금요!”하였다. 찾을 돈이 이백사십사만 얼마쯤 되었다. 가방을 안 가져갔기에 얇고 누른 종이봉투에 동전까지 담아 주었다. 내 평생에 그런 거금을 만져 보지도 못하였다. 봉투 들고 버스를 탔다. 대구까지 가서 다시 반야월 서호동으로 가야 하는 먼 우회길이다.

 종이봉투가 얼마나 얇던지 버스타고 오는 동안에 터져서 버스 속에서 이를 수습하지 못해 쩔쩔맸다. 현금으로 이백사십만 원은 내자에게 맡기고 나머지는 용돈으로 돌렸다. 내자는 그 돈을 장모님에게 갖다드려 이자가 높은 사채로 놓을 것이라고 하였다. 지금 이야기지만 그해 101일에 겨우 대구은행 종이통장을 최초로 만들었다. 대학봉급을 이제 현금으로 주지 아니하고, 통장으로 입금시켜야 하는 시대가 도래 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해 초등학교 교사 8년에 대한 퇴직금이라는 명목으로 거금(?)을 손에 쥐어 본 것이 생애 처음이다. 퇴직금, 그 후로 대학봉급 받을 때는 모두 내 통장으로 받았으므로 종이봉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2022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