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수필 4) 수그사이 환희 87. 초교 주임수당 일천 원
엽서수필 4 : 수필과 그림사이, 그 환희 |
87. 초교 주임수당 일천 원
이영백
1970년대만 하여도 초등학교 교사봉급이 미약하다. 그것도 남자들은 RNTC라는 훈련을 통하여 현역복무를 하지 않는 대신에 오지나 심심산골이라도 16절지 인사발령통지서 한 장 받으면 근무하러 가야 한다. 스스로 박봉이기에 의무연한을 채우면 1/3이 교사생활을 그만 두기도 한다.
교사로 근무하면서 상여금이라는 것이 5년째 되던 해에 처음 발의되어 그 다음해부터 받을 수 있게 된다. 학교현장에서 선생님들 중에는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하거나, 교직과정을 이수해도 중등학교 교사로 못가고 초등에 남아있는 선생님이 많았다. 현실적으로 자기자식 교육시키는데도 돈이 모자라서 교직원공제회 돈을 빌려서 교육시키는 형편이다.
초등학교 교사근무 현장에서 박봉은 소문이 아주 파다하다. 너무 봉급이 적기에 입만 떼면 사표를 쓸 것이라고 한다. 미혼교사는 가족도 없이 적은 봉급이라도 견딘다. 그러나 연세가 많은 주임교사, 교감, 교장으로서는 자기 자녀교육비가 모자라 돈 빌리러 다녀야 하는 박봉시대를 멀건이 바라보고만 있던 때이다. 멀지 않아 나에게 닥칠 형편은 불 보듯 뻔하다.
1978년부터 교사봉급에 상여금 지급이 논의되고, 1979년에서야 연 400% 상여금이 나왔다. 문제는 교사의 본봉이 낮기 때문에 상여금이 나와도 본봉으로 환산되는 금액으로 아주 적었다. 예로 본봉이 11만원이면 상여금은 11만원만 나오고, 나머지 각종 수당명목으로 나온 것에는 제외된다.
1978년까지 군(郡)으로 인사이동 다니면서 5~6년이 지나도록 1급 정교사 자격연수를 받지 못하여 여전히 2급 교사다. 그러나 논문 썼다. 문교부지정 연구학교에 연구주임교사가 필요하다고 교육청요청으로 나를 인사이동 시켰다. 봉급이 199,000이었다. 연구주임수당이 월 1,000원이다. 그렇게 7년 만에 20만 원을 채워 받게 되었다. 기분이 좋았다.
연구 주임교사 발령 받고, 한 달이 지나 봉급 명세서를 들여다보면서 기가 찼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 차라리 벼룩에 간을 내어 먹지….
세금 뗀다. 연구주임수당 일천 원이 나오면서 “결혼하고 배우자 있으며, 자녀 둘이면 금 이십만 원부터 간이세로 세금공제”된다. 즉 주임수당 일천 원 받고, 간이세금으로 일천이백 원 공제 당하였다. 주임수당 받아서 이백 원이 봉급에서 손해 본 봉급자의 서글픈 현실이다.
(20220213.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