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수필 4) 수그사이 환희 79. 대구 신천동 살다
엽서수필 4 : 수필과 그림사이, 그 환희 |
79. 대구 신천동 살다
이영백
1981년은 12월이 오면서 대학에서는 학생모집을 위한 계획이며 연말 문서정리에 집중하여야 한다. 원서양식부터 우리대학 행정에 편리하게 연구하여 재구성한다. 천연색화보 책자 인쇄하러 인쇄소로 출근도 한다. 빨강, 파랑, 노랑이 천연색 인쇄의 기본색이다. 여기에다 모든 색의 혼합인 흑색을 넣으면 최종 천연색이 나온다. 물론 “별색(別色)”이라 하여 조금 새로운 색이 필요하여 요구하다보면 인쇄 횟수가 늘어나 인쇄비가 늘어난다.
전문대학에서 학생모집이 어려워지자 TV에서 정사진 대학광고를 준비하러 대구mBC 1층에 있는 광고공사에 찾아가고 하였다. 광고는 종이매체보다 전파광고가 동시다발로 어디서나 아주 효과적이다. 안 보는 듯 하는 데 일시에 눈으로 본 것에서, 입으로 잘 전파되어서 광고효과가 대단히 크다.
추운 겨울이라 장모님이 곧잘 우리가 사는 동구아파트에 운동할 겸 도로 하나 건너 큰 딸네 집으로 놀러 오고하였다. 그날따라 토요일이라 회식하면서 시간이 늦었다. 요즘처럼 스마트 폰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급한 일이 있으면 삐삐를 치던 시절이다. 그것이 1981년 현실이다.
토요일에 장모님이 동구아파트에 놀러 오셨다가 “저녁에 이 서방하고 술이나 하자”고 집으로 머리 감으로 가셨단다. 머리를 감으시다가 넘어지면서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다. 아파트 문을 잠그고 넘어지셨으니 아무도 없이 혼자 돌아가셨다. 우리 아이들이 찾아 갔으나 문을 안 열어 주어 그냥 왔단다. 장인께서 늦게 집에 도착하여 문 열고 들어가니 돌아가셨다.
장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시고 막내 처제도 시집가고 없으며, 장인 혼자가 되었다. 원하던 안 원하던 내자가 맏딸이라 우리가 사 둔 아파트에 또 이사를 가야하였다. 청구고에서 구KBS 들어가는 입구 동구 신천 3동이다.
동구 신암동에서, 수성구 범어동에서 다시 동구 신천동으로 살게 된다.
1981년 내 생애에 반야월 서호동, 동구 신암동, 수성구 범어동, 동구 신천동 등으로 벌써 네 번째 이사를 거듭하는 것이다. 그 해는 확실히 악운인지, 행운인지 모르겠지만 이사를 자주한 한 해이기도 하다.
사실은 두 번째 집(아파트)을 사 두어서 처가에서 살던 곳이다. 막내처제가 시집가고 장인 혼자가 되어 우리가 자연히 들어가 함께 살게 되었다. 그렇게 두 아들이 외할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 사연이다.
(20220130. 일)